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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휼히 여기는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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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apocmc 작성일17-07-21 12:27 조회4,75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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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동 제6일

   날이 아주 누그러졌다. 이창재 전도사가 와서 강습회비 문제 때문에 염려하였고 주일학교 연합회의 처사가 불친절함을 이야기함을 들었다. 그리고 기도해달라고 하여 같이 기도하는 중에 그는 눈물 흘리며 기도하고 많은 은혜를 받는 것을 보았다.

   저녁에는 주께서 어떻게 인도하실는지 몰라 애를 썼으나 주의 긍휼하심이 나의 작은 믿음을 도우신지라. 역사는 시작되었다. 예수의 사랑의 운동과 기도의 운동을 말하여 우리가 중심에 사랑과 기도가 없으면 산을 옮기고 천사의 방언을 한대도 이는 다 무익함이라는 것을 설시하다. 12시경까지 기도하다.

 

* * *

 

   여관에 와서 누가 22장 39절 이하를 읽는 중 제자들의 용기에 대하여 느낀 바가 있었다.

   베드로가 칼을 들어 말고의 귀를 잘랐다. 저가 칼을 들어 저희를 대적할 용기는 있었으되 저희들을 긍휼히 여기며 순순히 잡혀갈 용기는 없었도다.

   전자는 육용(肉勇)이요, 허용(虛勇)이요, 후자는 영용(靈勇)이요, 애용(愛勇)이었다. 다른 제자들도 그때 일을 알고 "주여, 우리가 칼로 치리이까?" 하였으나 머지않아 다 달아나고 말았다. 칼로 치려는 용기는 있었으나 아직 사랑함으로 긍휼히 여길 수 있는 용기는 없었다. 전자는 세용(世勇)이요 후자는 성용(聖勇)이었다. 제자들이 아직까지 세상에 속한 사람이었으며 혈육에 속한 사람이었었다. 그런고로 주의 그 성용, 애용에는 따르지 못하고 그냥 달아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던 것이 오순절(五旬節)에 가서야 완전히 성애(聖愛)에 속한 용기를 얻게 되었다.

   신(神)의 사람, 하늘의 사람, 영의 사람, 성(聖)의 사람, 사랑의 사람이 될 때에 이러한 겸비와 순종의 용기를 체득할 수가 있는 것이다. 원수의 귀를 붙이는 예수의 용기, 이야말로 모양의 용(勇)이 아니고 육의 용도 아니라 진용(眞勇)이요, 실용(實勇)이었도다.


1931년 1월 14일 (수) 맑음

 

 

 

   영동 제8일

   오후에 집회를 마치다.

   오후 4시 영동발, 10시 경성착 

1월 1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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