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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박해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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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apocmc 작성일18-06-04 12:51 조회5,08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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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안 형편의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마음이 복잡하여 뒤숭숭한데다가, 항상 가슴에 뭉쳐있던 학문욕이 발동하여 드디어 1932년 가을에 나 [변종호]는 공부를 하기 위해 일본 나고야로 떠났다. 얼마 동안 나고야에 있으면서 나는 이상한 일을 알게 되었다. 부근에 모여 있는 학생들이 종교를 박해하거나 신앙자를 구타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제법 성경책이나 끼고 예배당에 다니던 교역자의 자녀들까지도 모두 시치미를 뚝 떼고 '예수교란 뭔지 이름도 모른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왠지 내 마음속은 '너만은 그래서는 안 된다' 하는 외침이 또렷하게 들려와 다른 사람처럼 숨기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래서 자주 다니지는 못하더라도 누구나 내가 기독교인임을 알 정도로는 성경책을 끼고 다녔다. 자연히 그런 행동을 하는 나에게 적지 않은 시비와 주목이 오고 갔다. 그러나 무슨 일이 일어나든 상관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은근히 걱정이 되기도 하여 '까짓것 안 믿은 척하고 말까'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이렇게 지내는 나에게 정말 큰 용기를 주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것은 내가 경모하는 용도 목사께서 편지를 보내주신 일이었다. 편지래야 엽서 쪽에 몇 자 간단히 쓴 것에 불과하였지만 조그만 그 엽서 한 장은 나에게는 큰 힘과 용기를 북돋워준 것이었다.


   오래간만이로다. 오락가락 심신이 어지간히 분망(奔忙)하였을지라. 형제의 마음은 정향(定向)이 없이 움직이는가 하여 자못 염려 깊노라. 형제의 푯대는 오직 주님인 것을 잊으면 그대는 가장 가련한 자일지라. 무엇을 하든지, 어디를 가든지, 주 그대의 영에 앉게 하라. 그리하여 주와 더불어 모든 일을 의논할 수 있어 얼마나 행복스러울 것인고. 범사에 참고 견디라. 주 그대를 보호하사 평안히 돌아오게 하시기를 바라노라.


11월 16일

신계읍교회 시무언

 


   이 편지를 받고 나서부터 나는 좀 더 열심으로 예배당에 다녔다. 매를 좀 맞는 일이 있어도 예배당에는 다니고 싶었다. 용도 목사님의 신앙을 위한 그 애씀과 조선 교회를 위한 분투를 생각한다면 이 세상에 무엇이 겁나서 예수를 믿지 않는다고 하거나 믿지 않는 척할 수 있겠는가. 혹자는 나의 이러한 신앙 상태를 어린 아이의 신앙이라고 우습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경로를 통해서라도 참되고 확고한 신앙을 얻을 수 있다면 이런 지도자의 공로는 더할 수 없이 크다고 생각한다.

   나는 나고야에서의 1년을 지내고 나서부터 신앙생활의 행복성(幸福性)과 신앙의 단맛을 조금이라도 알게 된 것이 더없이 기뻤다.


   본격적인 신사참배 강요가 일기 전, 1932년 가을 일본에 있던 한국 유학생 중에는 주먹이 무서워 성경을 감추고 기독교인 아닌 행세를 한 이들이 벌써 있었다. 이것이 이렇다 저렇다 말하기 전에 일단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보자. 예수 믿는다는 것을 공개하면 친구들이나 동료들의 눈총, 지탄, 비웃음을 받게 될 때에도 우리는 여전히 기독교인인가? 만약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이보다 좀 더 뚜렷한 박해 ㅡ 가령 신체, 언어적 폭력이나 사회적 불이익을 당한다면 어떻겠는가? 목슴이 왔다 갔다한다면 어떻겠는가? 지금이 남의 신앙을 운운할 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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