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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의인 당시는 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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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apocmc 작성일17-10-22 22:27 조회2,60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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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그 해 1931년 가을이었다. 원동교회 집회를 인도하시던 목사님은 어느 가족의 눈물겨운 형편을 닫게 되었다. 김OO씨의 가족이 끼니를 굶는다는 말을 전해 듣고 또 직접 보셨다. 그는 누구나 다 아는 사람이다. 어떤 일을 하다가 결국은 OO을 당했다. 그 가족이 살던 곳에서 더 이상 살 수가 없어 마침내 OO을 떠나 한국에 건너와 경성에까지 이른 것이다. 그러나 야박한 경성 인심은 그들을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조밥 몇 술도 얻어 먹지 못해 굶고 있었다. 이 소식을 목사님께서 듣게 된 것이다. 목사님이 그 집엘 찾아갔을 때도 대여섯 되는 식구들이 차가운 냉돌방에 서로 마주 보고 앉아 얼굴만 쳐다보며 허기를 달래고 있었다. 그 때 목사님께서 어떻게 하셨는지 알 수 없다. 다음에 있는 얘기는 그 후에 생긴 일이다.

   어느 날 오후 밖에서 들어오신 목사님께서 다시 급히 나가시려고 하셨다. 웬일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어디 가시는지 저도 같이 갈까요?" 했다. 그랬더니 목사님께서는 "아니야, 혼자 얼른 갔다 올게" 하시면서 나서려고 하셨다. 이런 때면 보통 "그럼 다녀오세요" 했었는데 오늘은 웬일인지 꼭 가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웬만하면 저도 데리고 가세요."

   "왜 꼭 따라가겠다는 건지 모르겠네."

   목사님께서 웃으시며 중얼거린다.

   "왜가 아니라 내가 가도 괜찮을 곳이면 목사님과 함께 좀 다녀보고 싶어서 그러는 거에요" 하고 대답하며 따라나섰다.

   앞서서 빠른 걸음으로 걷던 목사님이 운니동에 이르더니 2X번지라는 문패가 붙은 대문 앞에 멈추어 서시고 문패를 살폈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뒤를 보시며 내게 말씀하신다.

   "저기 서있는 저 양복 입은 청년이 형사지요."

   하시더니 용기를 내시는 듯,

   "자, 들어가자고" 하시며 대문을 들어선다.

   가족과 함께 방에 들어선 목사님은 가족에게 나를 소개하시더니 그 가족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며 간절히 기도를 드렸다. 기도를 끝마치고 한참 이야기를 주고 받던 목사님께서 나에게 기도를 하라고 하셨다. 내 기도가 끝난 후 목사님께서는 하얀 봉투 하나를 김 씨의 미망인에게 건넸다.

   집을 나서서 거리를 걸으며 나에게 김 씨와 김 씨의 가족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그 가족이 경성에 온 것을 안 경찰서에서는 그 집에 출입하는 사람을 감사하기 위해 항상 골목에 형사를 세워둔다는 것이었다. 그 위험하고 찾아가기 힘든 집을 목사님께서는 자주 찾아 다니셨다. 그 해 겨울, 목사님께 들어온 돈이나 물건은 거의 다 김 씨 가족에게 전달되곤 했다.

 

   여기서 "누구나 다 아는 사람" 김OO씨는, 청산리 전투의 김좌진 장군이다. 1930년 1월 24일 중국 만주에서 그가 피살된 뒤 가족들은 서울 야박한 인심에 "조밥 몇 술도 얻어 먹지 못해 굶고 있었다." 일제에겐 원수 같은 김좌진이니 순경을 배치하여 유가족을 감시하였는데, 그런 상황에서 그들을 돕는 것은 위험을 무릅쓰는 일이었다.

   오늘의 영웅이 당시는 좀 홀대를 받았나 보다. 내일의 역사는 종종 이렇게 변덕스럽다. 아니, 흔히 당대는 의인을 알아보지 못한다고 해야할 듯! 시간에 퇴색되지 않는 대의(大義)에 입각하여 세상을 보는 자세만이 시대를 축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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