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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아우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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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apocmc 작성일17-10-25 23:30 조회2,53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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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종호 씨로부터

   나의 경외하는 유일의 형님에게,

   방금 형님의 글을 받았나이다. 언언구구(言言句句) 그 어느 것에서나 피 묻은 순교자의 절창(絶唱)이 아님이 없음을 느꼈나이다. 걱정 마십시오. 아우도 이제는 정말 깨달았습니다. 몽롱한 초승달 아래서 끄덕끄덕 졸고 있는 기독신자가 아니고,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를 비통히 부르짖고 고개 숙여 운명하시는 예수를 원판에 찍어 현상인화까지 해놓은 사람입니다. 이를 악물고 땅을 두세 번 친 사람입니다.

   아우는 신을 보았습니다. 이것은 어떤 특수 모형의 하나님을 만들어냈다는 것이 아니요, 예수 자신이 남기고 가신 유혈의 자취를 문자 그대로 전승한, 형식의 옷은 벗기어 낸, 정통 기독교를 발견 체득하였다는 것입니다.

   나는 구원을 얻었다고 믿습니다. 구원이란 "하나님, 하나님" 하며 통곡하는 것도 아니요, 사람의 상상으로 만들어낸 황금길 천당에 가는 것도 아니라, 예수의 인격적 감화로 말미암아 얻는 새로운 자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에 의한 사람의 인격적 개조가 즉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밝은 양심의 참된 명령이 즉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또 그 양심을 슬프게 하지 않을 각오가 있으므로 나는 구원을 얻었다고 자신합니다.

   '사람 용도'란 안경을 통하여 예수를 보고 '독생자 예수'란 창문을 통하여 하나님의 전모를 보고 또 뛰어가 그의 옷자락을 붙잡은 '나'라고 믿습니다.

   그날 밤 형님을 작별하고 오면서 차 중에서 아우는 얼마나 애를 썼는지요. 하늘에 쌓는 것이라고 하시며 있는 의복 중에서 좋은 옷을 골라 입혀주시고 손에 돈을 한 줌 쥐어주시는 그 심경을 어떻게 하면 나도 붙잡을 수 있을까 해서요. 그러던 차에 이곳에 와서 우연히 책 한 권을 얻었으니 [기독교의 신건설]이란 것이었습니다. 아우는 이 책 한 권에서 28년간 의운(疑雲) 가운데 헤매던 기독관을 참으로 통쾌하게 정해각득(正解覺得) 하였습니다.

   형님께서 사람을 이 세상 누구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자애로 대접하시는 것이 부지중에 주님을 영접하는 것이 된다는 것도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의미를 오늘날 형님을 보고서야 정말 깨달았단 말입니다.

   형님께서 아우 한 사람을 얻으신 것이 밤잠 안자고 울며 야단치는 기분에 춤추는 일시적(?) 신자 여러 사람을 얻는 것보다 못하지 않은 것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믿고 싶습니다.

   나의 피는 지금부터 끓기 시작합니다. 예수교가 미신적 우롱(愚弄)으로만 생각이 들 때에는 예수라는 두 자만도 끔찍이 내 눈에 귀찮은 존재이더니 한번 '이것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올 때는 마태복음 전편을 앉은 자리에서 2시간여에 독파할 수 있었으므로 봐서 내가 좀더 수양정진하고 주님께서 나를 불러 일으키신다면 내 믿음 그것도 절대적으로 고정강화 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을 구하는 일에 내 몸을 바칠 수도 있으리라고 확신되나이다. 형님, 아현사건, 그것의 내용을 아우는 잘 모릅니다마는 형님의 장래가 이리이리 되리라는 것을 저는 옛적에 미리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형님이 피를 토하고 거꾸러지는 그 순간은 하나님께서 이 부족한 자식을 필요한 데 기용하려는 순간인 줄로 믿고 대기 중이올시다. 만사에 염려 마십시오. 오직 이 한마디로 저의 품은 바 포부와 각오를 대표해 두겠습니다.

   형님, 당분간 진리의 소개를 좀 절약하시고 사람을 지도하실 때 좀 조심하시기를 바라나이다. 때가 이루기까지요. 진리에 인공(人工)을 가(加)하라는 것이 아니요, 산 송장들에게 가유(訶諛)하라는 것도 아닙니다. 더 큰 일을 더 많이 하기 위해서는 내 명을 좀 더 연장시킬 필요도 없지 않을 듯하다는 것입니다. 

(계속됨)

 

 

   오늘날 이렇게 뜨겁고 순수하며 무엇도 끊을 수 없을 만큼 사랑으로 끈끈한 관계를 어디에서 볼 수 있을까? '당신'을 위해 내 목숨을 주고 싶어 안달인 그런 관계를 본 적 있는가? 당시 변종호는 스물여덟. 아, 목숨을 주어도 아까움 없을 친구를 동시대에 만날 수 있음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이해관계 때문이 아니라, 교권의 역학 때문이 아니라, 그저 사랑, 너무 사랑하여서 너를 위해 나를 주기 원하는 무리들, 그렇게 뭉쳐진 무리들. 그들이 세상에 비추어주는 희망색은 눈물, 감명의 눈물색이다.

   이용도(1901 ~ 1933)를 위해 반세기를 고생한 변종호(1904 ~ 1984)가 없었더라면 이용도는 한국교회에 그토록 기억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은 변종호에게 이용도를 선물하셨지만 이용도에게도 변종호를 선물하셨던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한국교회에 주는 선물들이었다. 오늘 나는 누구에게 하나님의 선물이 되어 주고 있는가?

 

 

"우리의 가장 큰 선물이 되시는 주님을 생각하니 옥탑방도 궁궐입니다. 그 주님 생각하며 나도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좋은 선물이 되는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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