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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현성결교회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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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apocmc 작성일17-11-06 00:47 조회3,15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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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현 집회는 9월 28일 월요일부터 10월 4일 주일 밤까지 예정되어 있었다. 강단에 서니 낯익은 무리들이 보였다. 기도에 불 붙은 협성신학교 학생들이었다. 이들은 학교의 허락도 받지 않고 기도하러 간다는 쪽지만 사무실에 남겨놓고 성결교회에 와서 다시 기도로 밤을 새우려 했다.

   학교 측에서는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선생들은 분통을 터뜨리며 이튿날 아침 학생들을 호출했다. 하나씩 학교로 불러들이는데 그 기세가 심각했다. 학교규칙에 복종하지 않으면 학교에서 퇴출을 시킨다는 것이었다. 이용도는 이를 두고, "가관입니다. 찬송할 일입니다. 울 일입니다"라고 했다.

   찬송할 일이었다. 하나님께서 이 신학도들에게 얼마나 크게 역사하셨으면 이렇게 기도에 미쳐버릴 수 있단 말인가? 울 일이었다. 선생은 학생들을 위한다면서 막 타오르기 시작한 기도의 불씨 위로 물대포를 들었으니.

   그런데 문제는 협성신학교만이 아니었다. 아현교회도 심상치 않았다. 기도에 한 맺힌 신학생들의 눈물은 기도의 불 위에 붓는 기름이었다. 기도의 불은 성결교회 청년들에게까지 옮겨 붙었다. 용도가 못 이겨낼 정도로 "간청"하여 용도를 단 위에 세운 "교회 주임전도사"는 이런 현상에 당혹감을 느꼈다. 신학교 집회 때의 사회자처럼 말이다.

   용광로처럼 뜨거운 집회가 닷새째를 맞이하는 날 밤이었다. 이용도가 하루에 3~4회의 설교/강해, 일반사람보다 3~4배 빠른 말씨, 일반설교보다 3~4배 많은 분량을 설교하니, 이때까지 아현교인들은 일반주일 설교를 135~320회 가량 듣는 것과 맞먹는 설교를 들은 셈이다. 이는 약 2년 반~6년치 주일설교를 들은 분량이다! 이 정도로 기도와 설교와 찬송이 집중적으로 휘몰아치니 아현교인들도 기도의 불길에 삼켜지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다.

   금요일 밤 집회 중 용도는 즐겨 부르는 찬송을 제창했다.

 

인애하신 주세주여 내 말 들으사

죄인 오라 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

주여 주여 내 말 들으사

죄인 오라 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

 

자비하신 보좌 앞에 꿇어 엎드려

자복하고 회개하니 믿음 주소서

주여 주여 내 말 들으사

죄인 오라 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

 

   장내의 일동은 회개와 소망의 찬송을 목청껏 불렀다. 성도들의 가슴은 아팠고 또 시원했다.

   집회가 끝난 뒤 용도는 숙소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아현성결교회의 부흥을 위해 자기의 피와 살을 내어줄 수 있기를 간구했다. 12시경에 누군가가 그를 찾아왔다. 주임전도사였다. 그의 안색에는 전에 용도를 모시기 위해 "간청"할 때의 겸손함과 간절함이 더 이상 없었다.

   "오늘 왜 그런 찬송을 브르셨습니까? '죄인 오라 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 말입니다. 신자는 예수를 믿고 죄 사함을 받아 의인이 되었는데 왜 다시 죄인이라고 하는 것입니까? 이는 성결교회의 교리와 맞지 않습니다. 목사님의 집회는 여기까지만 해주십시오."

   용도는 따지지 않고 모든 것을 주님의 뜻으로 받아들이며 짐을 싸서 무악산으로 들어가 기도를 드렸다. 기도의 바위는 이상하게 뜨끈뜨끈했다. 며칠 전 협성신학교 학도들이 뿌렸던 눈물 때문이었다. 용도의 눈물이 떨어진다. 그러자 며칠 전 떨어졌던 신학도들의 눈물이 그 자리에서 일어난다. 용도의 눈물과 신학생들의 눈물은 서로를 부등켜안고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손을 꼭 잡고 밤이 새도록 '눈물의 왕'께 기도를 드렸다. 기도가 기도를 만나고 설움이 설움을 만나니 이날 밤은 외롭지 않았으리라.

   하루가 지나고 새벽 동이 트자 용도는 산에서 내려와 집으로 돌아갔다.

   이튿날 새벽 아현교회에는 난리가 났다. 이 목사님이 사라졌다니! "목사님이 쫓겨났다"는 말이 돌자 장내는 더울 술렁였다. 교인들은 "통곡하며 옷을 찢고" 교회가 망해간다는 듯 가슴을 두드렸다.

   속타는 성도들은 걸어서 반 시간 거리에 있는 현저동으로 달려갔다. 그들의 심장에는 교회를 향한 애절함의 피가 거세게 유통되고 있었다. 교인들이 속속 용도의 집으로 모여 울며 기도하니 그곳이 부흥회 터가 되었다.

   주일인 다음날 오후에는 한 제직이 용도의 집으로 와서 인사도 없이 그대로 바닥에 엎드리며 통곡했다.

   "오 주여, 죄인의 무리(無理)를 용서해 주옵소서! 성결교회란 단체가 의인을 못 박고 멸시하였나이다."

   그는 성별회를 인도하던 중 도저히 마음이 아파서 기도 중에 그대로 이용도의 집으로 달려왔던 것이다.

   이후로는 협성신학교 학생들과 아현성결교회 청년들이 기도에 목이 말라 용도의 집을 찾아오니 자연발생적으로 부흥회가 열렸다. 그런데 이것이 어느 사람들에게는 "위험분자들의 밀회"요, "교회의 난적"들의 작패로 보이기도 했다. 어쨌든 협성신학교와 아현교회 사건은 성령께서 이용도를 통하여 서울에다가 어떤 일들을 하고 계신지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한 맺힌 사람의 기도는 무섭다. 식욕보다 강한 기도욕을 억눌림 당했던 협성신학교 학생들이 용도의 성결교회 집회에 참여했다. 그들의 기도가 얼마나 뜨거웠을까? 이어 아현교인들과 청년들도 그 불길을 이어받아 전에 없었던 정도로 기도가 폭발했다. 그래서 신학교의 사회자처럼 성결교회 전도사는 성도들을 진정시키고 싶었고, 이것이 불가능해 보이자 최후의 수단으로 교리를 들먹이며 용도를 쫓아냈다. 우스운 해프닝이었다.

   그럼에도 이용도의 기도운동은 서울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종로의 피어선성경학원(현 평택대학교)에도 적지 않은 수의 기도자들이 일어났다. 이들은 한국을 아래서부터 위로 흔들고자 하는, 신앙의 새 능력을 갈망하는 개혁세력들이요, '기도단'이었다. 용도의 부흥회 중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면서 기도에 불이 붙은 뒤로 기도와 전도에 전념했던 이들은 고난의 시기를 지나던 한국교회에 얼마나 큰 보탬이 되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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