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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묵상집

죽음과 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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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apocmc 작성일17-11-28 11:55 조회2,570회 댓글0건

본문

   본문_ 히브리서 9장 27절~; 베드로전서 1장 24절~

   죽음의 법 

  모든 사람이 재산, 처자, 권속을 떠나기 싫어합니다. 그러므로 죽음은 부자의 법이 아니고 복자의 법이 아닙니다. 로마가 다른 법은 만들었으되 죽음의 법은 내지 못했고 일본이 다른 법에는 밝되 죽음의 법칙은 모르고 있습니다.

   죽음의 법은 누구나 피하지 못합니다. 남녀, 빈부, 영미인(英美人) 그리고 누구나 이 법 앞에 차별이 없고 이 법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나도 죽고 여러분도 죽을 것입니다. 세상의 그 누구나 다른 그 무슨 법은 부인할 수도 있고 반항 불복할 수도 있으나 죽음의 법에 거슬릴 수 있는 자 한 사람도 있지 않습니다. 세상 법을 다 폐해도 죽음의 법을 폐할 수 없고 인간이 다 걱정하면서도 폐하지 못하고 인류 전체가 총동원해서 등장(等狀)을 들어도 이 법을 폐하지 못합니다. 별 수 없으니 복종할 수밖에 없고 울 수밖에 없고 가슴과 땅을 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심판의 법

   사람이 죽지 않을 수 없는 것같이 죽는 자 또한 심판 받음을 면할 수 없습니다. 인간이 이 세상에 살아 있어서 살아간다는 일 순간, 일 동작은 다 하나님의 심판의 재료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결국 누구나 다 두 개의 법정에 서게 되어 있나니 제1의 법정은 죽음의 법정이요, 제2의 법정은 심판의 법정입니다. 그런데 이 심판은 죽어서 주님에게 받기 전에 이 세상에서 날마다 날마다 예심의 조사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저녁에 여기서 한번 첫 심문(예심)을 해봅시다. 여러분의 손을 어떤 데 써왔습니까? 타인(打人), 도적, 술잔, 투전 그렇지 않으면 조인(助人), 구인(救人), 협력에 썼습니까? 그 손이 의로운 일에 움직였으면 천국행에 기록될 것이요, 불의에 썼으면 지옥행에 기록이 될 것입니다. 아무리 무지한 사람이라도 제 손이 의의 손인지 불의의 손인지는 압니다. 선한 손을 가진 자 영복(永福)에 참여하고 악의 손을 가진 자 영벌(永罰)에 임하게 됩니다.

   눈도 그렇습니다. 평화의 눈이 만인을 평화롭게 하나 독살스러운 눈이 많은 사람의 기분을 해하고 평화를 파괴합니다. 눈을 잘 쓰는 자는 나 복되고 남 복되게 하나, 눈을 악용하는 자는 나를 해하고 남을 해하는 것입니다.

   귀도 역시 그렇습니다. 좋은 말과 교훈을 잘 듣는 자 복되고, 악담, 외설만 따라다니며 듣는 자는 화를 받습니다.

   입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데 입의 역할은 두 가지입니다. 먹는 것과 말하는 것. 먹는데도 먹어서 하나님을 영광되게 하기 위해서 먹기도 하고 술, 담배 등 해로운 것을 먹어서 내가 해를 받고 남을 해하기도 합니다. 말. 나쁜 말이 얼마나 나와 남을 해하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거짓말, 욕설, 음담, 악언, 이 얼마나 사람을 해하는 흉기입니까.

   발도 같은 발을 가지고서 예배당에 가는 발도 있고 칼날을 타는 무당의 발도 있으며, 살인, 활인(活人)에 쓰는 발, 음란방탕에 다니는 발, 도적질 다니는 발, 남을 구하러 다니는 발이 있습니다.

   사지 백체(百體)를 잘 쓰면 하나님의 성전이 될 수 있으나 귀, 눈, 입, 코를 잘못 쓰면 그것이 다 죄악의 무역항이 됩니다. 그러면 내 신체를 잘못 쓰게 되는 원인은 어디 있는가 하면 그것은 마음의 잘못된데서 시작됩니다. 몸이 잔인 악독한 행동을 한다는 것은 벌써 그 마음이 악해져서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심판은 그 마음을 상대로 해서 행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어두움을 좋아하는 자 지옥의 길을 찾고, 광명을 좋아하는 자 천국으로 인도함을 받는 것입니다. 마음에 도적의 마음을 품은 자는 벌써 도적의 죄를 범한 자요, 마음에 음심을 품은 자는 벌써 음행을 한 자입니다.

   세상 법은 행동을 보고서 처벌하나 하늘의 법은 그 마음 상태를 보아서 처벌합니다. 그러므로 남을 재판하는 재판관도 하나님의 심판은 면하지 못합니다. 서울서 부흥회 때에 경찰관 1명이 참회를 하는데 법에 따라 남을 다스렸다는 모든 것이 다 범죄 행위였다고 통곡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람의 재판에는 불공평이 있을 수 있으나, 하나님의 심판은 공평무사, 절대 공평한 것입니다. 얼굴 번번한 신사숙녀도 안에는 큰 죄악을 가지고 있습니다. 애를 써서 감추어 가지고 있으나 하나님의 심판의 칼날을 피하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생각하면 세상 사람은 모두 다 감옥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슬픔의 감옥, 불평의 감옥 속에서 살고 있지요. 이런 감옥 생활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심판을 이 세상에서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信) · 불신(不信)도 자유요, 선행 · 악행도 자유입니다. 그러나 꼭 생각할 것은 그 누구나 죽음을 피할 수 없고 끝날 심판을 면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 심판은 외형에 나타난 것에 의하지 않고 속마음 상태를 보아서 행하는 것이매 천당과 지옥에의 갈림은 그 마음 상태로써 결정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3장 10절에 보면 "의인은 없어, 한 사람도 이 세상에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속죄가 만인을 다 의롭게 하신다는 것은 참으로 오묘한 진리요, 기적입니다. 크나 적으나 죄를 짓지 않음이 없는 만인이 오직 주님을 믿기만 하면 죄 사함을 얻는다는 사실, 이 얼마나 위대하고 엄청난 축복의 사실입니까. (찬송 121장 '내 주의 보혈은')

   사람의 심판이 죽은 후에 있다고 해서 재세(在世) 시의 일시적 기쁨을 위해서 범죄하는 자가 있으나 우리는 재세 시에 당장 심판이 시작되는 것을 알아야겠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에 배심판사로서 양심이 항상 따르고 있습니다. 도적질을 하려 할 때 먼저 양심의 심판을 받고 음행을 하려 할 때 어떤 방면에서 이의를 제출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이 양심의 심판을 무시하거나 이의를 눌러버리고 범죄를 하면 그 다음에는 심고(心苦)와 상심이 따라오는 것입니다. 가인이 아우를 죽인 후 "가인아, 네 아우가 어디 있느냐?"는 음성이 들려올 때 저는 모른다고 하였으나 그 다음에 "네가 무엇을 했느냐? 네 마임이 왜 편치 않으냐? 네 얼굴이 왜 변하느냐?"는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범죄한 자에게 네 단계의 벌이 임하는바 그것은 첫째, 마음이 상하는 것입니다. 가슴이 편치 않고 마음이 답답합니다. 의를 행하는 자 그 몸은 혹시 피곤하거나 몰리는 일이 있어도 그 마음은 태평하고 기쁨에 넘치는 것과 좋은 대조가 되는 것입니다. 음행, 도적 등 범행한 후 마음이 무겁고 불편함은 범죄에서는 오는 벌의 무거운 짐이올시다.

   둘째, 모습이 변하고 안색이 변하는 것입니다. 마음에 불안이나 공포가 있을 때 얼굴 빛과 피부 빛이 변합니다. 마음이 변하면 체질이 변합니다. 병에 걸려 변질할 때 소화불량, 늑막염, 폐병, 화류병 등이 오는 것입니다.

   셋째, 그 다음에는 조직적인 파괴가 일어나니 부부이별, 부자무의(父子無義), 가정불화, 가정파멸 등이 이르는 것입니다.

   넷째, 그리고는 경제적인 파멸이 필지(必至)합니다. 죄악은 만성일 뿐 아니라 유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父)의 범죄가 자녀에게 매독을 유전하듯이 죄악은 자자손손 유전됩니다. 심상(心傷), 신상(身傷), 조직파괴, 경제파멸이 있은 후에는 사망이 이릅니다. 죽음은 최후의 교실(敎室)이요, 최후의 학교입니다. 아무리 악인이라도 죽음에 이르러서도 회개하지 않는 자가 있다면 그는 무기징역을 자원하는 자입니다. 세상의 무기 징역은 그래도 한 번 출옥할 때가 있으나 참된 무기징역은 끝이 없습니다. 지옥이 없다는 자도 있으나 우리는 확실히 알 수 있나니 세상에서 슬픔, 안타까움, 눈물, 한숨에 잠겨 사는 생활, 이것은 분명히 지옥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지옥의 불은 알코올이나 담배나 성행위로 끄지 못합니다. 오직 천화(天火)와 성령의 불로써만 처치할 수 있습니다. 철저히 통회하고 성령의 불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찬송 117장 '갈 길을 밝히 보이시니')

   인간이 이 세상에서 지옥을 경험하는 것과 같이 천당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사랑과 진리의 평강과 평화가 그것입니다. 지옥이 마음에 있듯이 천당도 심중에서 경험됩니다. 성령의 불로 죄와 지옥을 멸해버리면 천당에 사는 듯한 감격과 감사를 느끼나니 이것이 분명히 천당의 일면을 이 세상에서 알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찬송 117장 다시)

   참으로 속죄를 얻지 못한 자는 죽음을 두려워하며 그리스도를 얻지 못한 자 또한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불신자에게는 지옥밖에 없고 믿는 자에게는 천국문이 열리어 있습니다. 그러니 지옥으로 향할 것이냐, 천국문으로 둘어갈 것이냐는 신(信)의 유무에 있는 것입니다. 신앙은 예수의 살과 피로 맹세하여지는 것임에 믿는다는 일은 예수의 보혈을 믿고 의지하고 마시는 것입니다. 예수의 피와 성신의 감화만이 우리로 신앙생활을 하게 하며 천국으로 가게 하나니 우리는 믿어야겠습니다. 십자가는 죄보다 크고 강한 것입니다. (121장 찬송).


1931년 12월 23일 오후 7시 명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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