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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만의 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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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apocmc 작성일17-12-06 23:47 조회2,73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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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지 몇 장이 왔는데 그 중에 만우 송창근 형님의 편지와 희서 자매의 글이 나를 크게 위로하여 준다.


   아우님네여, 나는 수일 전에 일본까지 왔소. 살아서 오는구려. 살아 있기만 하면 세상에서 다시 보게 되거니와 죽은 것들은 어디 가서 만날까.(송창근 형의 편지)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채 낫지도 않은 병폐(病肺)를 부둥켜 안고 미국으로 가서 고학을 해서 박사를 해가지고 7년 만에 다시 살아옵니다그려. 속으로 중얼대고 그 인자하고 또 신비에 움직이는 눈, 굳세어 호락호락 하지 않은 속을 알려 주는 듯한 그 코, 도미의 길에 오를 때 양복 한 벌이 없어서 내가 입었던 양복을 뜯어 고쳐서 주던 그 비극의 한 장면, 그리고 이것저것을 생각하였다.


   이곳에 2~3일 있다가 대판 등지를 다녀 용구 처를 보고 곧 서울로 가리이다. 서울 도착소식은 미리 알리지 않겠소. 서울로 가는 대로 곧 찾아가리다.


   어디 오고 가는데 사람들 죽 나와 북적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 내 성미와 같다. 그러나 오는 날을 알리지 않으므로 차에서 내리는 그 얼굴, 큰 일을 하고 돌아오는 그 장쾌한 첫번 축하를 하지 못하는 섭섭함이 나의 마음을 섭섭케 함을 느끼었다.

   내일부터는 정거장에 나가 살아야겠다. 그러나 형을 우리가 첫번 맞아 무슨 거리낌이 있어 그리하는가. 왜 내게 많은 편지를 하지 않는가 하는 야속한 생각이 또 들어온다. 아서라 그것은 그의 성미이었나니.

1932년 1월 1일 (금)



   만우 형님이 어제 아침 착경하셨다고. 급한 마음으로 현저동 집에 오니 7년 이역에서 박사공부에 피를 다 짜내고 남은, 희고 마른 얼굴이 기다리고 있다. 살아 돌아왔을 뿐 아니라 귀하고 권위 있는 학위까지 얻어가지고 왔으니 그리고 신앙의 불이 더욱더 붙고 있으니 '천은이 지대함' 오직 감읍(感泣)할 뿐이다.


   한 사람을 사랑치 못하고는 전세계를 참으로 사랑할 수 없다. 사모하는 사람에게 내 생명을 바치지 못하는 자가 어찌 길가의 행인을 위하여 죽을 수 있을 것인가.

일자 불기(不記)

 

 

   송창근과 이용도의 인연에 대해서 변종호는 설명하기를,


   송창근 박사와 용도 목사와는 특별하게 깊은 인연이 있다. 송 씨가 피어선성경학원에 다닐 때에 우연히 사귄 두 사람은 어느새 절친해졌다. 7, 8년 전 그가 미국으로 공부를 가고 싶은 생각은 많으나 손에 한 푼도 없으니 떠날 여비도 준비할 도리가 없어서 그는 고민하는 것이었다. 이때에 신학교 3학년에서 고학을 하던 용도 목사가 송 형의 마음속은 짐작되나 그도 역시 단 몇 원을 어찌할 길이 없었다. 오래 동안 생각하던 용도는 슬그머니 집(현저동 산기슭에 전세로 들어있던 조그만 집)을 팔았다. 전셋돈 250원 전부를 건네주고 제가 입던 오직 한 벌인 깨끗한 양복을 줄이고 고쳐서 입혀주어 그를 미국으로 공부하러 보냈던 것이다. 이러한 송 씨가 7년 만에 박사가 되어서 돌아오니 용도 목사의 감개가 어떠했을 것인가.


   송창근은 한국에 오기 전에 일본 대판(오사카)에 들러 이용도의 제수씨 장양옥을 보고 서울로 왔다. 그가 서울 이용도의 집에 왔을 때 이용도는 황해도에 있었다. 송창근이 왔다는 소식에 이용도 급하게 서울로 내려오니 7년 만에 두 사람 재회하다.

   변종호는 송창근이 피어선성경학원에 다닐 때 이용도를 우연히 사귀게 되었다고 한다. 송창근이 피어선에 다니던 때는 1916~9년으로 보인다. 이때 이용도는 개성 송도고보에 다니거나, 독립운동으로 개성에 있는 소년형무소에 있었다. 그렇다면 둘이 어떻게 만났는지는 확인하기가 어렵다. 이용도의 아내 송봉애 여사와 송창근의 성씨가 같은데 어떤 연관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앞으로 송창근이 보내오는 편지의 내용과 분위기로 보아 두 사람의 각별한 관계를 느낄 수 있다. 이용도는 가장으로서 집을 팔아 송창근의 유학비용을 보탰으니 송창근은 이용도에게는 고맙지만 용도군의 아내와 어린 아들 영철에게는 얼마나 미안했겠는가.

   송창근이 신학박사가 되어 돌아왔다는 것은 이용도에게 무슨 의미일까? 변종호의 평가를 들어봄으로 이번 장을 마친다.


   7년의 세월은 두 사람을 잘 길러주어 하나는 신학박사가 되고 하나는 유능한 부흥목사가 되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부흥목사가 된 용도. 어느덧 삼천리를 편력하는 순회 부흥목사가 되고 또 벌써 어디서부터인지 핍박 공격의 손길이 자기를 향해서 다가오는 것을 느끼게 된 용도는 그 누구를 의지하고 싶은 생각이 나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에 이 신학박사가 오게 되니 그 마음이 어떠했을 것인가. 송 박사에게 대한 그의 기대는 컸고 송 박사를 의지하고 싶은 마음도 어린애기같이 순진하고 열렬하였다. 그래서 앞으로의 조선 기독교계는 이 두 사람의 동정에 크게 영향을 받을 것을 예상케 하는 것이었다.

   서울에 도착한 송 박사는 얼마 후에 평양으로 내려와서 숭실학교 교목으로 들어갔다. 송 박사는 평양에 자리를 잡고 용도 목사는 평양을 원심(圓心)으로 하고 그 주위를 빙빙 돌며 땀을 흘리며 피를 쏟는 생활을 계속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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