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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심을 보내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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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apocmc 작성일17-12-12 23:52 조회2,67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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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 성심이가 세상을 떠난 뒤 변종호가 곁에서 지켜보며 눈물로 쓴 글이 있다.


   동대문 집회를 마치고는 곧바로 인천내리교회로 가시었다. 이 동안에 딸 성심이가 병들었다. 병의 원인은 건포도 몇 알을 먹인 것이 잘못된 것이다. 어머니가 예배당에 가면서 복순(집에 와 있던 소녀)에게 맡기고 갔더니 울지 말라고 건포도를 먹였다는데 그것이 병이 되었다고 한다.

   목사님이 인천서 돌아오신 때는 성심이가 죽기 전날 저녁때이었다. 이때에 성심 모녀는 당주동 전일의원에 입원을 하고 있었다. 목사님은 곧 병원으로 달려오셨다. 그날 밤 새벽 일곱 시에 숨이 졌는데 '숨질 때 되도록' 죽어가는 어린 딸의 곁에 꼳 붙어있어서, 있는 정성 있는 사랑을 다 쏟으시며 어루만지고 기도올리고 눈물 흘리시는 정경은 밸이 끊어져와서 못 볼 지경이었다.

   식어진 딸의 몸을 자기 손으로 씻겨주신 목사님은 옷도 자기 손으로 입히시고 관에도 자기가 넣으시고 못질까지 자기 손으로 하신다. 저녁이 거진 저물어 갈 때에 작은 관을 앞세우고 이태원 공동묘지로 갔던 우리는 밤 열두 시가 넘도록 이 산 저 산으로 헤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이태원 묘지는 만원(?)이 되어 묘를 더 쓰지 못한다고 홍제원 서남쪽 무슨 묘지로 가라는 것이다.

   1월 11일이면 제일 추운 때다. 이날 밤에 어린 송장을 끌고 수십 리를 방황하다가 밤 열두 시가 넘어서야 묻고 돌아오는 그 마음속을 생각하여보자! 나는 이태원까지 나갔다가는 돌아왔다.

   "변 선생은 못 따라와. 집에 가라고."

   나를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시는 목사님도 나보다 별로 든든치는 못하시었다. 그러나 그는 그 험한 길을 다 걷고 무덤자리를 자기가 잡고 자기 손으로 파묻고야 돌아오신 것이다.

 

 

   성심아!


   성심아너는아직 살어잇구나

   어머니의무릅에 안기워잇셔

   한손이할머님께 잡힌그대로

   한손에네작란깜 드른그대로


   진세 에생을밧어 겨우육개월!

   네생은고러케도 짧어섯구나

   그러나이생에서 너당한설음

   엇지면그다지도 만헛섯는고


   아비겻테못놋코 세상에올때

   네가웨친제일성 나는외로워

   백일에사탕한개 너못먹엇지

   그러선지말없서도 너는울두나!


   량팔을벌니고서 곤두곤두야

   아버지인천간새 너배운기도

   아버지께보이려 어미가슴에

   니마대고올니던 네기도묘양


   그설음도이제는 안당하겟고

   그재냥도다시는 못피겟는데

   그림속네모양은 아직여전해

   그림보다내눈은 눈물지노라!

 

 

   복순이 웨갓서? 복순이 어듸갓서?

   목사님이 인천서 돌아오시자마자 바로 병원으로 왔었고 또 곧 죽어서 묻노라니 그 병의 원인이나 병난 후에 여러 가지 사정을 아실 시간이 없었다. 그러나 다 묻고 돌아서서는 그 자세한 사정을 들을 수가 있었고 또 복순이가 집에 있지 않음도 알게 되었다.

   목사님은 복순이가 나간 이유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부인께 향해서 엄중히 문책하시는 것이었다.

   "복순이 왜 갔소. 복순이 어디 갔소. 당장 가서 찾아오우."

   이때의 그 얼굴과 그 음성은 칼날같이 날카롭고 추상같이 두렵다. 울면서 사죄하는 부인을 그냥 책망하시며 "당장 나가서 찾아오라"는 그 심중은 사랑 이상으로 인정과 의리와 정의에 불타고 있음을 알 수가 있었다. 책망하던 목사님과 곁에 있던 나도 부인과 함께 울음을 울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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