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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묵상집

새끼나귀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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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apocmc 작성일17-12-30 23:53 조회2,70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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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화(松禾)에서 기갈을 느끼는 영들이 매일 200~300명씩 회당에 모여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한다고. 나를 보내달라고. 만일 내가 가면 황해도 일대에서 다 모일 것이라고.

   오 주여, 나를 오라 하오나 나는 갈 아무 힘도 가지지 못하였나이다. 주여, 나에게 새로운 은혜를 주시기 바랍니다마는, 달라고 하기 황송하옵니다. 일평생에 한 번만이라도 이 죄의 몸에 주의 신이 임하셔서 영광을 나타내주신 것만 해도 영원한 복이었나이다.

   주님께서 일찍이 나에게 신으로 임재하셨던 일을 내가 잊을 수 없나이다. 한 번만도 나를 위해서는 족하였나이다. "또 군림하옵소서" 못하는 것은 주님께서 오래 거처하시기에는 너무도 편협하고 또 고결하지 못한 곳인 까닭이로소이다. 어쩌다가 한번 오셨다가도 편치 못하여 주님은 곧 가실 수밖에 없는 곳이올시다.

   오 주여, 크고 훌륭한 준마를 다 내어놓으시고 비리 먹고 연약한 이 나귀새끼를 어용(御用)키 위하여 불러 타주시었으니 왕을 태운 나귀새끼의 영광이 얼마나 하오리까. 주님은 불편하시겠지만 그러나 주님은 당신의 편리나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고 오직 무용한 이 나귀새끼에게 영광을 입히시기 위함이었던 것을 나는 알고 있나이다. 내가 일찍이 만인의 환호 속에서 걸어갔었고 사랑의 깃발을 든 군중의 사이를 통과한 것은 주께서 나를 크게 긍휼히 여기심이었나이다.

   나는 지금 생명 없고 빛 없는 캄캄한 외양간 한 구석에서 무용하게 세월을 보내고 있다 할지라도 나는 결단코 슬퍼하거나 괴로움으로 하늘이나 사람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물론 나의 신세를 자탄하지도 않겠습니다. 다만 한 번이라도 어용에 끌리어갔던 그 영광에만 만족할 것이었습니다. 그것만이 영원히 가시지 않을 나의 영광인 까닭이올시다. 그때의 그것만이 나에게 영원히 살아있을 바 생명인 까닭이올시다.

   한 번 입혀주신 영광, 이것이 곧 나를 영원케 하였습니다. 한 번 사랑해주신 그것만으로 나는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게 된 것입니다. 한 때의 얻은 사랑은 나의 중심을 영원히 비치는 광명한 빛이옵니다. 한 번이라도 더 임하여 주셨으면 하는 소원이야 언제 없을 때가 있겠습니까마는 그래도 "와주시옵소서" 하고 용감스럽게 호소하지 못하는 것은 내 꼴이 너무 볼 상 없고 내 재능이 너무 졸한 까닭이올시다.

   그러나 이 캄캄한 외양간에서 마른 풀을 먹으며 쓸쓸한 밤과 낮을 외롭게 보내며 서있는 것은 그래도 어느 때에 또 한 번 주님의 용자를 뵈올 수 있을까 하는 바람이 있는 까닭이랍니다. 만일 이 소망이 없다면 나는 벌써 어디로 뛰쳐나가 달아났을지도 모릅니다.

   세상은 왕을 기다립니다. 자희를 위하여 한 번 행차 거동하여 주옵소서. 이 작은 나귀는 그때를 기다리며 날과 날을 보내고 있는 것을 잊지 말아주세요. 그래서 어느 날이나 오실 때에는 이 작은 나귀를 손짓해 불러주세요.

   "내가 간절히 기다리고 바라는 것은 만사에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여전히 지금도 완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로 하여금 존귀케 하려 함이라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요 죽는 것도 유익함이 되느니라"(빌1"20~21).

1932년 3월 24일 (목) 맑음


 

   지난 여름 황해노회의 결의는 이용도에게만 아니라 황해도 장로교인들에게도 충격이었다. '전국을 누비며 교회를 위해 땀과 눈물을 뿌리는 목사님께서 무교회주의와는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황해도 송화의 교인들은 "매일 200~300명"이 모여 울며 기도했다. 이 소식을 듣는 이용도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이용도는 사방에서 날아오는 주먹을 세상의 방식대로 받아치지 않는다. 자기가 "캄캄한 외양간" 구석으로 몰리게 되었음을 모르는 바 아니나, 하나님을 원망치 않고 자기를 미워하는 사람들을 미워하지도 않는다. 신세를 한탄치도 않는다. 그는 자기를 향한 세간의 비난, 교계의 왕자들의 공격에 주목하지 않는다. 대신 다른 곳에 눈을 둔다.

   세상이 나를 향해 무슨 소리를 하든지 더 중요한 것 있었으니, 어느 때에라도 또 한 번 주님을 뵈옵는 것이었다. '세상이 나를 어떻게 보나?'보다 '나는 어떻게 한 번 더 주를 뵐까?'가 중요했다. '세상의 좋음'을 전부 합치고 여기에 '세상의 시련'을 전부 합하여 둘을 더하여도 그 수는 '주님의 좋음'에는 턱도 못 미치는 것이었으니.

   주님을 보는 소망! 만나는 기대! 오직 이것이 그로 하여금 반격의 정죄에도 절망의 늪에도 빠지지 않고 시련을 인내케 하였다.

   왕께서 다시 오실 때 그분은 무엇을 불러 타실까? 자부심 많은 자칭 준마들에게 눈길도 주지 않으시고 저 비천한 나귀새끼를 타시는 것은, 그분께서 겸손하신 때문이리라.

 

 

"주님, 당신의 오심을 갈급한 마음으로 기다리오니, 주여 오시옵소서. 그러나 주님, 저의 지난 인생이 허물과 어리석음 가득하고 선한 일은 하나도 하지 못하였으니, 조금만 더 시간을 허락하시사 오늘부터는 주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그 사랑을 겸손히 행하게 도웁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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