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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묵상집

예수께만 물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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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apocmc 작성일18-01-08 23:09 조회2,49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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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우 형,

   성실 형은 늘 고(苦)는 나의 선생이라고 하셨거니와 진실로 그러하외다. 인간의 참된 진리는 필히 고를 통하여 오는 것이었으니 고를 경유치 않은, 곧 그저 흑판 밑에서나 책자의 흑점을 통하여 얻은 바 진리를 흙덩이 같다고 하면 전자는 금덩이 같다고 할 것이외다.

   형은 이제 또한 큰 것을 배우셨으니, 곧 육적 표현의 모순이 그것이외다. 이는 대철학자라도 깨우치기 어려운 진리인 줄 아나이다. 이런 이유로 육을 영으로 살리어야 한다는 예수의 십자가적 진리를 형은 누구보다 더욱 명확히 체득하실 줄 아나이다. 형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 하에 있음을 잊어서는 아니 됩니다. 그리고 그 은총이라는 것은 일종의 시련임을 기억해야 됩니다.

   형아, 나는 나의 일에 대하여 아무 수단도 방법도 없다는 것을 알아다오. 무슨 깊은 철학적 원리를 나에게 묻지 말아다오. 죽음! 이것만이 나의 수단이요, 방법이요, 원리라고 할까. 그리하여 날마다 죽음을 무릅쓰고 그냥 무식스럽게 돌진하려는 것뿐이다. 어느 날이든지 나의 빛 없는 죽음! 그것이 나의 완성일 것이다.

   형아, 나는 이론(理) 없이 빛 없이 죽으려 한다. 뒤에 조리 있고 빛 있게 싸울 사자(使者)가 나오기를 바라면서, 나는 무리(無理)하게 죽을테니 형은 유리(有理)하게 살아 주지 않으려나. 나는 법 없이 조리(條理)없는 운동에 제물이 되거든 형은 법적으로 조리 있게 일하여다오. 이를 위하여 나는 먼저 떨어져 죽는 작은 밀알 한 알갱이가 되려 하노라.

   오호, 그러나 내 죽기를 무릅쓰고 나가려 하나 그러나 왜 이리 나의 헌신이 불철저하냐.

   저희들, 의인의 눈물과 땀과 마지막에는 피까지 흘리게 하지 않고는 마지않을 저들의 앞에 나는 나의 피와 살로써 큰 설교를 삼으려 하노라.

   형아, 그대는 아끼라. 세련을 더하라. 그리고 후일 나의 값없이 떨어진 눈물 혹 피와 살을 형의 설교의 한 재료로 취하여다오.

   아, 이리 되기를 나는 바란다면, 오, 저주할 나의 오늘이여! 언제나 이날이, 나의 완성의 날이 될 것인고.

   형아, 말없이 기도만 하라. 그냥 정관(靜觀)하라. 내성(內省)하라. 그리고 신명(神明)을 기다리며 천계(天啓)를 바라라. 형을 두고 하나님은 크게 하실 일이 계시니라. 신학교에서 형을 중심으로 하여 기도의 무리의 한 둘레가 생겼으면 하는 나의 바람이 나의 심중에서 머리를 든다.

   우리의 배울 바는 예수의 생활 그것이다. 예수는 신자(神子)라고만 하여 죄인인 인간들이 감히 따라가지 못할 것으로 전하여 내려온 현 기독교신학의 한 흐름은 분명히 기독자(基督者)로 하여금 기독에게서 무한히 멀게 만들었다.

   예수의 생활은 외적으로 보아 아주 단순하였다. 복잡한 현대의 사업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의 내용은 깊고 높았다. 그러므로 예수의 생활을 알려면 그의 외적 표현으로만은 그를 알기에 부족하니라. 그의 내적 움직임, 그의 영의 약동, 거기를 한곳이라도 만져보아야 한다. 그리하여 그 영과 나의 영과의 접촉으로부터 일어나는 사랑의 전광(電光) 또 그 사랑의 뇌성(雷聲)이 나의 생활 전체를 영향주게 하여야 한다. 곧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의 전체가 움직여지고 나는 나의 존재조차 찾지 못할 지경에 들어가야 한다.

   형에게 대하여 할 말이 무척 많은 것 같으면서도 말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사람처럼 하고 있다. 그는 전체를 하나님께 맡기고 다만 위로부터의 움직임이 있기를 바랄 뿐이기 때문이올시다.

   형아, 모든 것을 예수에게 물으라. 세상도 예수에게 묻고 기독교도 예수에게 묻고 인생도 예수에게 묻고 너와 나도 예수에게 물으라. 세상을 어찌 사회학에 물으며 기독교를 어찌 신학에 물으랴. 인간을 왜 두옹(杜翁 · Tolstoi)에게 물으며 사옹(沙翁 · Shakespeare)에게 묻느냐. 너를 어찌하여 내게 물으며 나를 어찌하여 세상에 묻느냐. 형아, 다만 모든 것을 예수에게 물으며 모든 것을 다만 예수에게 배우기 위하여 형은 자주 그와 만나라.

   총총불비(悤悤不備)​.

4월 12일이 시작되는 때

인천 내리교회에서

 

 

   이용도는 이전 김광우에게 편지로, "톨스토이는 나의 선생입니다. 그를 통해서 예수를 더 잘 믿기에 이르렀습니다"라고 했다. 그런데 여기서는, "왜 예수에게 묻지 않고 톨스토이에게 묻느냐"고 한다. 1931년 10월 중 김인서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자기는 별 것 다 본다고 하면서 ㅡ 약간 비꼬는 뉘앙스를 풍기긴 하지만 ㅡ 무교회지, 순복음지, 장로회지, 감리회지, 사회주의지도 본다고 했다. 1931년 11월 23일에는 신앙서적 10권을 산 뒤, "하나님의 진리를 배우려고 함이었다"고 했다.

   사회학과 신학과 문학이 세상과 기독교와 사람에 대해 가르쳐주는 것이 많고 유익함이 사실이나, 친밀한 만남 가운데 예수에게 묻는 것보다는 늘 아래일 수밖에 없다. 예수는 가장 위대한 선생이시오, 가장 높고 깊고 넓고 큰 학문이시니,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골2:3). 학문폐기론이 아니라, 사회학도 신학도 겸손히 예수께 굴복하라는 것이다. 그들도 예수를 만나라는 것이다​.

 

 

"주님, 주를 자주 만나는 행복과 거기서 오는 총명은 세상 모든 학문의 도합보다 우승한 것이니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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