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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묵상집

주님이면 그만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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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apocmc 작성일18-02-03 23:29 조회2,44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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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호빈 씨에게

   신설리(新設里)를 22일에 마치고 극도의 피로를 느끼는 작은 몸을 건넌방에 뉘였다가 혹은 무의식적으로 먼지 속에 경성거리를 타박타박 걷기도 하며 오늘까지 다 지내고 오늘 밤부터 다시 체부동(體府洞)서 시작하겠소이다.

   옳습니다. 꺼꾸러져 절명할 때까지 무엇이나 사양치 않고 나갈 것이외다. 아 그러나 육체의 약함보다 영의 피로가 더 곤란한 일이지요. 그저 어디 정숙한 곳을 나의 영은 목말라 찾건만도 이 육신이 아직도 번거로운 서울에 혹은 인파 속에 다닙니다그려.

   여름을 기약하여 입선(入鮮)하소서. 혹 지금부터 도보로 떠나 경성까지 와보시면 꽤 많이 얻을 것이 있을 것이외다.

    나는 도보 여행이 원(願​​)이외다. 여름에 오라는 데는 많은데, 하기 집회로 어디로 끌리어갈지! 할 수만 있으면 유폐(幽閉)한 곳으로 믿음의 형제가 모여 얼마간 지내보렵니다.

   혹, 도보로 오시면서 교회마다 찾아 전도하시면서 오시면 어떨까요. 하여간 내가 북행하기는 어려운즉 나오시는 게 좋겠소이다. 평양 형제들은 그 지경 내(內) 어디로 정하자고 하는데 그들은 다 투사들이라, 현 교회의 불신앙과 어디까지든지 적극적으로 성전(聖戰)을 계속하려는 이들인 고로 교회만은 평양을 내놓아서는 안되겠다고 합니다. 되어도 평양에서요, 안되어도 평양에서일 것이라고.

   나도 다소간 그런 느낌이 없지 않습니다. 교회부흥 곧 전선적으로의 것은 평양에서부터가 아닐까 하는 점에서 내 생가도 그곳을 유의(留意)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꾸 평양으로 오라고 하는군요. 그러나 나는 시기상조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그(전투)보다도 정적한 곳에서 주님과의 친교가 더 있기를 원하여 마지않을 뿐입니다.

   나는 아직 기도처니 수도원이니 믿음의 형제들의 집합이니의 문제를 가지고는 혹 한두 번 기도가 있었던가 할 정도이고 그렇게 열중하여 졸라본 적이 없소이다. 그저 되는대로 끌리려는 심정이었는지. 하여간 나도 그 방면(기도, 수양)을 많이 원하면서도 졸라대지는 못하는 모양이외다. 어디 되는대로 두고 볼 수밖에.


   세상에 제일 기괴한 것이 '나'라는 기적적인 존재이었으니 나의 운동도 '?'이었고 나의 생각도 '?'이었고 나의 내일 나의 장래가 모두 주목거리입니다. 그저 어떻게 해서 지금까지 살아왔고 그 일에 대하여는 전혀 나의 설계나 포부가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나는 이 우주 안에서 '나'라는 최대의 재료를 두고 밤낮 큰 배움에서 사는 자로소이다. 다시 한걸음 더 나가서 나의 소위(所爲)를 모른다는 것은 곧 성의(聖意)를 모른다는 말과 부합(符合)할 것이니 주는 나의 창조주이시요, 또 통치자인 까닭이지요. 이점에까지 와보면 나는 나를 모르는 게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주님! 모든 설계 다주님께 맡기고 오든, 가든, 앉든, 서든, 교역을 하든, 농사를 짓든, 주님의 생명만이 우리에게 있어 더욱더욱 풍성하여지기를 간구하는 외에 더 큰 일이 없을 것 같소이다. 이것저것을 구한다는 것보다 주님만 소유하도록 다만 그 하나를 구할 것입니다.

   왜? 그의 안에 하나님의 일절 풍성함이 있는 고로! 우리의 모든 것의 모든 것이 되시는 주님이라고 하면 주님 외에 달리 무엇을 구하오리까. 주님을 얻은 후에는 그 전체를 맡기고 순종함. 그것이 오직 우리의 일일 것입니다.

   곧 '부지(不知)로써 신종(信從)함' 이것이 우리의 첫째 되는 일이요, 또 마지막 되는 일이니 우리는 이로써 우리의 의무를 다할 것이외다.

   알고 따름이나, 이해가 되니깐 기쁨을 느낌이나, 소원이 성취되니까 용기를 얻게 된다는 것은 신앙의 사람으로서는 한 다리를 잃은 자와 같은 불구적임에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그저 당면하는 대로 주와 이야기하고 거기서 부지적 신종을 배워 나가기에 죽도록 충성을 다할 것입니다. 주 허락하시면 조만간 이루어 주시겠고 불연(不然)이면 평생 우리 눈으로 부지 못하게 될는지도 모를 것이외다. 하여간 주가 있어 좋았으니 주님 외에 다시 무엇이오리까. 오주님! 오주님! 첫째도 주님, 둘째도 주님! 또 셋째도 주님이었으니 주님은 곧 우리의 알파요, 오메가로소이다. 교원 하에서도 주님! 단상에서도 주님! 산중이나 거리 속에서도 주님! 그저 어디서든지 주님이면 그만이요, 또 완성이외다.

   형님! 주님의 분(分)을 더욱 많이 얻는 광영을 이 소제로 하여금 보는 광영을 얻게 하옵소서. 주님의 내용이 우리에게 더욱더 넘쳐 나오게 되도록 그와의 혈관적 연락(連絡)을 이루어 족할 것이었습니다.

   호운은 학교나 집안에서나 다 인심을 얻어 모든 사람의 호의 속에서 지내나, 그러나 어려운 살림살이에 옷이야 신발이야 문제가 없지 않으나 아직 양복 한 벌도 사주지 못하였소이다. 물론 내가 50원을 받으니 그것쯤이야 할 수가 있겠지만, 늘 식구가 7~8명 이상은 보통이고 그 수를 퍽 초과할 때도 많은, 적은 듯해도 큰 살림, 또 뜻하지 않는 비용이 매월 적지 않고 장모님의 생활비와, 저가 졌던 빚 좀 갚노라고 미안한 것을 송죽(松竹)도 옷 한 벌 못해 주었습니다.

   물론 살림을 할 줄 알고 또 간단 축소가 되면 공부하는 이들은 염려 없이 할 것이나 어디 그렇게 되었습니까. 형님네 위해서도 매월 다만 조금씩이라도 보내드리려고 생각이야 많았지만 늘 뜻대로 안됐습니다. 눈 앞에 보이는 참담에 접하게 되니까 더욱 그렇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고향집에서도 이제는 살 수 없다고 돈을 보내주어야 살겠다고 재촉들인데 못 보내고 그저 있으니 집안에서도 버림을 당한 불초 자식이외다. 그러나 돈으로 어찌 사람이 삽니까. 나는 그 문제에 포로가 되지 않으려고 늘 애쓰나이다. 어디 또 앞으로 지내봅시다. 어찌되는지!

   우리의 일생이란 늘 싸움의 생활이니깐, 그저 맨손으로 필승을 기약하고 믿음으로 돌진합시다. 그리하여 죽는 날이 완성의 날인 것이니 어서 죽음이 오소서​.

5월 26일

 

 

   이용도가 "다 투사들"이라고 하는 형제들은 지난 4월 평양노회의 결정을 적법하게 여기지 않고, "현 교회의 불신앙과 … 성전(聖戰)을 계속하려는" 상태다. 이들은 "교회만은 평양을 내놓아서는 안되겠다"면서 전투를 치르고자 한다. 그러나 이용도는 그보다 먼저 고요히 주님과의 친교가 있어야겠다고 한다.

   여기서 성전, 전투는 무엇일까? 불신앙적인 사람들, 특별히 기도를 제한하고 이용도를 막으려 하는 평양노회의 어느 "어른들"과 벌이려는 전쟁이다.

   편지는 승리에의 확신과 믿음으로 돌진함을 다짐하며 꿋꿋하게 끝난다. 싸우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니, 믿음으로 죽음까지 돌진하는 자가 결국적 승리를 얻는 것이다.

 

 

"주님, 믿음과 기도와 인내로 싸웠던 신앙의 선진들을 기억하며 죽음 그 완성의 날까지 돌진하려나니 나를 받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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