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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묵상집

전 사회주의자의 고백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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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apocmc 작성일18-04-10 12:00 조회2,53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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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광우 씨로부터

   오, 나의 형님이시여,

   나는 지금 주의 은혜의 샘 앞에 앉았소이다. 진리의 빛 아래 엎드렸소이다. 과거에 있어서 맛보지 못하던 무한의 환희, 무한의 광명이 나를 휩쓸 때 나는 이때의 광경과 심경을 무슨 말로 형언할는지 아마도 지상에서는 형용사를 찾기가 어려울 줄 압니다. 나는 지금 감격과 환희에 넘쳐 나의 가슴은 나도 모르게 뛰놀고 나의 맥박은 몹시 빠름을 느끼나이다. 이 감격, 이 환희를 나는 내 힘으로 얻은 것도 아니요, 또 지상의 무엇이 준 것도 아니요, 오직 주께서 위로부터 내리시는 은혜의 힘임을 알아 나는 무릎을 꿇고 주님께 엎드려 감사하는 바이올시다. 그런데 내가 이럴 때마다 이 지상에도 나의 감사를 받아야 할 사람을 내가 발견할 수 있으니, 나의 신앙생활 과정에 있어서 하늘을 향하여서는 주님께 나의 사정을 고백하는 동시에 의논하고 이 지상에 있어서는 그를 향하여서 내가 모든 것을 말하지 않을 수가 없소이다. 그는 곧 형님이올시다.

   나는 2, 3일 전에 옛날의 나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는데 오늘 어거스틴전(傳)을 읽다가 또 다시 나는 옛날의 나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암흑에 헤매면서도 광명의 세계에 있는 줄로 알던 그때. 죄악의 심연(深淵)으로 기어들어 가면서도 생명의 길에 있는 줄로 알던 그때. 죽음의 길에서 생의 길인 줄로 알던 그때. 사회주의자로서 일생을 바치려고 마르크스 경제학과 유물 변증법적 철학 속에 머리를 파묻고 주야로 머리를 썩히던 그때. 자기가 배워야 할 많은 무지를 들고서 천진난만한 어린이들을 우롱하던 그때. 반종교적 사상에 끌려서 생명의 길을 찾아가는 어린이들을 그 길에서 끊어주던 그때. 소위 신(新)도덕이란 관념 아래서 자기방탕을 변호하면서 양심의 상처를 그대로 안고 장한척하던 그때. 하늘의 은혜 아래 있으면서도 그 은혜를 깨닫기는커녕 도리어 하나님을 저주하고 멸시하고 희죄(戱罪)하던 그때. 무신론, 유물론이 아니면 학문으로 알지 않고 세상에 제일 어리석고 미련하고 가면을 쓴 인간은 종교가라고 조소하던 그때. 무한한 내적 모순과 상처와 죄악을 내포하면서도 체면 좋고 교육자라는 미명 아래서 교육의 근본주의를 그르치고 있던 그때. 'Sweet Home'의 꿈에 끌리어 까딱했으면 큰일 낼뻔하던 그때. 소년시대를 거쳐서 성(性)에 눈이 뜨이기 시작한 후 사자 같은 충동에 끌리어 철없이 날뛰던 그때. 그러면서도 사람 앞에서는 가장 순결한 자의 반(班)에 있었고 또 그렇게 자처하던 그 냄새 나고 가증스럽고 교활하던 그때. 아, 헤아릴 수 없는 여러 장면이 나의 영의 앞에서 활동사진같이 지금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세상의 법률 아래 있어서는 선인의 행세를 하여 왔습니다. 벌써부터 나는 하나님 앞에서는 허언자(虛言者), 절도반역자, 부도덕한(漢), 극악한(極惡漢)이었나이다. 나의 죄악의 양이나 질로 보아 나는 벌써 이 세상에 있을 물건이 못됩니다. 벌써 죽음의 다스림 아래에 있어야 할 물건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지하의 물건으로서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지상의 존재로 이것을 쓰고 있는 것을 자인하게 되오니, 이는 놀라운 일이올시다. 아주 위대한 기적이올시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올시다. 넓으신 사랑의 덕이올시다. 이 일을 생각할 때 나는 하나님께 무엇을 바쳐서 그 은혜를 찬송하며 보답하오리까.

   나는 나라는 존재를 생각할 때 자못 감격에 넘치는 감사와 눈물에 젖은 찬송 외에 아무것도 가지지 못합니다. 첫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요, 둘째는(용서하십시오) 형님에게올시다. 그 이유는 기갈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이 있어 생명수를 마셔야 할 터인데, 그 생명샘을 알지 못하여 빈사의 지경에 있을 때 생명샘의 길로 인도하여 그 생명수를 먹여준 자가 있다면, 그 사람에게 있어서는 그 생명샘과 그 인도자, 그 둘의 은혜가 꼭 같이 크다고 할 것이기 때문이올시다. 주는 생명의 원천이요, 진리의 주체시요, 은혜의 빛이었나니 이제 그것을 찾지 못하여 죽을 수밖에 없던 나를 인도하여 그 생명, 그 진리, 그 은혜, 그 사랑에 접함을 얻어 이제 새 생명의 지음을 받았습니다. 첫째로 주님, 둘째로 사람(형님)이란 말에 무슨 모순이 있을 것입니까. 이 말에도 형님께서 나를 용서하실 뜻이 있을 줄 믿습니다.


(계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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