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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묵상집

우리일은 예수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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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apocmc 작성일18-04-24 11:57 조회2,56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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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천농 씨에게

   북진와서 웅기읍 목사에게 편지를 쓰고 지금 형님에게 또 이 글을 씁니다. 웅기는 내년 1월 하순 이후가 아니면 안 될 듯합니다. 기양, 평양, 숙천 등지에서 23명이 혹은 도보로 혹은 도중소승(途中小乘)하면서 200여리를 부르튼 발을 끌고 어제 밤 이곳 도착하는 모양을 보니 꼭 중세기의 순례들을 방불할 듯하외다.

   광산지대라, 아, 단장(斷腸)의 애화(哀話)는 마음의 아픔을 참기 어려운 것이 많습니다. 10월 7일 평양노회에서는 나의 금족령이 내렸고 만일 당(黨) 노회 경내에서 나를 청하는 교회가 있으면 상당한 벌을 한다고 한 것은 지난번 소식과 같거니와 형제들은 딴 집회소를 준비하겠다고 야단들이나 어찌될는지. 대보산 별장도 1,000여 원이면 살듯한데 어찌될는지. 하여간 일은 확대되는 모양이외다.

   그러나 우리는 직권행사(우리에게 없지만)가 우리 일이 아니요, 이론투쟁이 우리 일이 아니요. 자금모집이 우리 일이 아니요. 다만 예수의 마음으로 삶에 우리 일이 있었으니 이마에 돌이 박히도록 주의 마음만을 살 것이었습니다. 소곳하고 그러나 굳세게 주의 마음을 살 것입니다.

   머리에 돌 박히기까지 주를 따라 나갈 것인데 우리가 약하구나. 그저 기도합시다. 기도의 불이 살아있는 유일의 증거구려, 욕을 먹으면서라도 기도합시다. 쫓겨나서도 기도합시다. 최후의 승리는 기도자들에게 있을 것이니……

   마귀는 자멸이외다. 누가 멸망시켜서가 아니라 저의 하는 일이 결국은 멸망에 빠질 일인 것이외다. 처음에는 승리 같으나 종말은 멸망이외다.

   불의는 선승후패(先勝朽敗)라 먼저 이겨가지고 패하는 것이요, 의는 선패후승(先敗後勝)이라 져가지고 이기는 것이외다. 공회(公會)에서는 실패이나 한 사람 앞에서는 완전한 승리를 얻습니다. 그런고로 저희들은 공회적, 법적 승리를 기대하여 거기서 만족을 얻으려 하였으나 각 사람을 상대해서는 함구(含垢) 패배이었던 것입니다. 공회의 마음은 얻었으나 결국 한 사람의 마음도 얻지 못한 것이요, 주님은 한 사람의 마음을 얻으므로 결국 만인의 영을 얻습니다.

   나는 대중이 나의 상대가 아니요, 다만 한 사람이 나의 최선의 상대이었으니 대중을 위하여 나의 생명을 버리지 못하나 한 사람을 위하여는 나의 전체를 희생에 바치기 원하는 것이외다. 회중(會中)에서 실패, 인전(人前)에서 승리, 이것이 우리에게 있을 바 일이구려. 우리가 회(會)를 위하여 충의와 사랑을 다하지 못하나 한 사람을 위하여는 생명을 아끼지 말 것이외다.

   이미 안주 방면에서 도보로 오신 분이 20여명인데, 어젯밤에 또 근 20여명이 밤을 새워 왔구려. 밤새도록 걸어서 오늘 아침에 또 지팡이를 집고 왔구려. 난리 난 세상같이 거리에 사람들의 눈이 둥그래졌습니다. 벌써 40여명이 모였으니 본 교인보다 다수가 될 듯. 내게는 큰 걱정이외다. 그러나 염려 없소. 내가 맡은 사람이요? 주가 맡은 사람이지! 오 주여, 저들을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마시옵소서.

   이곳 집회는 어찌될는지. 성의가 있겠지. 이런 변은 처음 봅니다. 안주 교회가 통틀어 온모양이니 아마 목사님들이 좀 얼떨떨할 듯하외다. 북진교회에서도 어쩐 영문이지 몰라 놀라고 있는 모양이외다. 200여 리가 아마 문턱 같은 모양이지. 늙은이, 아이 모두 더 섰으니, 천국에는 원근도 없고 주야도 없는 것이외다. 아, 말세의 인간들이여, 깰지어다. 주가 가까웠나니.

   나의 가는 곳마다 나를 위하여 간절한 기도를 올려주시오. 우리 믿음의 형제들은 뒤에서 기도로, 나는 앞에서 전위대로 싸워볼 일이외다, 머리에 돌 박히기까지.

   싸움은 크게 벌어졌소이다.

10월 15일

 

 

   1.

   평안북도 북진 집회는 시작부터 충격이었다. 평안남도 안주 집회에서 은혜를 받은 성도들 약 40여명이 200리를 밤낮 걸어 북진까지 왔다. 기양, 평양, 숙천 등지에서도 23명이 필사적으로 북진까지 좇아왔다.

   평남 안주에서 평북 북진으로 가려면 산마루 몇 고개를 넘어야 하는데, 아이와 노인까지 200리를 왔다는 것은 기독교사(史)에 남을 감동의 기록이다. 1주 전 평양노회가 '이용도는 평양에 오지 말라'고 결정한 때, 평양의 어느 성도들은 이용도의 부흥회에 참석하고자 평양을 떠났다는 것이 어딘가 상징적이다.

   평양노회로 인하여 목회 생명의 큰 위기를 겪는 이때 이용도는 간도의 이호빈 및 평양 기도단원들과의 연락이 잦아진다. 이용도가 노회에 직접 저항하지 않고 그들의 어리석음을 공개적으로 비판하지 않지만, 신뢰하는 동무들에게는 자기의 속내를 솔직히 드러낸다.

   오늘 편지는 1932년 8월 그리고 1932년 4월과는 달리, 노회의 결정을 꽤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인상을 준다. 저들은 말로 되지 않을 무리들임을 직감하고, 본격적인 믿음의 싸움에 돌입힌다. 이용도와 그 무리들의 무기는 기도 ㅡ "욕을 먹으면서라도 기도"요 "쫓겨나서도 기도"다. 거기에만 승리가 있다고 믿는다.

   노회는 공회적으로 이용도와 무리들을 제한하고 해산시키고 쫓아냈지만, 그로 인해 한 사람의 마음도 주님께로 인도한 것은 아니었으니 처절한 패배였다. 반면 이용도와 무리들은 교권의 힘은 없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환란 중에 기도하는 참된 신앙의 증인들이 되어줌으로써 주님께 영광을 돌리니 처절한 승리를 얻는다.

   왜 그때 교권은 이들을 내버려둘 수 없었던 걸까? 이들이 그렇게 악한이었단 말인가? 우리가 읽고 있는 이들의 편지와 이용도의 일기가 교회를 혼란시키는 진정 악인들의 그것이었단 말인가? 그런데 이들이 악인이 아니라 실은 주님의 일꾼이요 선인이었다면 선인을 악하다 하는 자야말로 악한 복면을 쓰고 있는 것이 된다.

 

 

   2.

   편지 말미에 이용도는 지금이 말세라고 느끼며 '주께서 가까이 왔으니 깨어 있으라'고 권한다. 신약에서 이런 종말론적 권고는 몇 차례 등장한다.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니라"(막13:33).

 

"곧 임박한 환난을 인하여 …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때가 단축하여진고라"(고전7:26, 29).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벧전4:7).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이러한 선포들의 목적은 성도들로 하여금 다가오는 환란에 대비케 하고 신앙을 강하게 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경고가 있고 주후 70년 예루살렘 성이 함락되고 성전이 파괴되는 대환란이 닥친다. 바울은 '임박한 환난'을 이야기했고, 베드로는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음'을 그리고 요한은 '때가 가까이 왔다'고 경고하는데, 초대교회는 시련과 순교가 점철된 시대였다.

   즉 "때가 가까이 왔다" 혹은 "주가 가까이 왔다"는 말씀은 구체적으로 얼마 뒤에 주님께서 오실 것을 말하는 예언이 아니라 ㅡ "그 날과 그 때는 …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막13:32) ㅡ , 이 말씀을 통해 교회로 하여금 곧 있을 환난에 대비시키거나 내일 주님이 오신다는 믿음으로 오늘을 인내케 함에 목적이 있다.

   여기서 이용도의 종말론적 강조는, 얼마 전 평양노회로부터 받은 금족령이 고난의 끝이 아님을 그리고 앞으로 더욱 큰 어려움이 있을 것임을 자기도 모르게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번 가정해보자. 그 다음, 이를 이용도 개인이 아닌 교회사적으로 적용해본다면(이는 이용도가 당시 뜻한 바는 아니었겠으나 이후 역사를 아는 우리는 그러한 정보를 가지고 새롭게 해석을 시도해보려는 것이다), 이용도가 생의 자리를 떠나는 1933년 이후부터는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가 점점 일어날 것이고 교회는 큰 시험을 당할 것이다. 환난의 때가 가까이 오기에 한국교회는 깨어야 했다. 죄를 회개하고 의를 행해야 했다. 예수로 완전무장이 되어 있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놀라운 날'이 가져오는 시련을 이겨내지 못할 것이었다.

   변종호는 일제 및 공산 치하 한국교회사의 순교신앙적 맥의 기원을 이용도와 연결시켜 주장한다. 순교자인 산정현교회 제4대 주기철 목사의 부인 오정모 사모가 1934년 평양 정의여고를 졸업한, 즉 1931년 여름 이용도가 광성고보와 정의여고 연합집회에서 3회 한 설교를 들었을 것이라는 점, 1931년 겨울 이용도가 산정현교회에서 최대의 활약을 했다는 점 그리고 "평양 한의정, 배인식, 장수은 전도사와 김예진, 박관준(장로), 최봉석 목사 등이" '예수께 미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죽자'고 외치던 "이 목사와 깊은 인연이 있는 이들"이라는 것이다.

   학문적 밝힘은 아닐지라도, 동시대의 세심한 관찰자로서 주는 그의 통찰은 가벼이 들을 것이 아니다.

   반면 이용도로부터 결사신앙을 배우기 거절했던 무리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이용도를 매장한 교권은 1930년대가 끝나기 전에 너도나도 신사참배에 굴복한 역사를 써내었다. 유명무명의 한 사람 한 사람이 승리했을 뿐, 공회와 조직들은 속속들이 무너졌다. 1930년대 초 이용도를 매장한 것이 신학적 측면보다는 정치적 측면이 발휘된 것이었기에, 이때의 '정치성의 계발'은 30년대 중반부터 나타나는 신사참배 강요에서 교권자들로 하여금 생존을 위한 발악으로써의 정치성 발휘를 하게 했고, 이는 한국교회의 수치와 범죄 그리고 이후 교단 핵분열의 씨앗이 되는데 일조했다고 전혀 생각해볼 수 없지 않다.

   만약 한국교회가 '결사적 예수신앙'의 이용도를 교회 밖에다가 못박지 않고 엎드려 귀를 기울였더라면, 신사참배의 날을 강인한 신앙으로 맞이할 내성(耐性)을 갖추었을 것이다. 그럼 오늘 한국교회는 자기 자신과 민족과 세상 앞에서 더욱 떳떳함과 긍지를 갖게 되었을 것이고, 이는 민족과 동아시아와 세계에 복음과 평화의 씨앗을 심는 일에 더욱 자신감과 의욕을 고취시키는 자본이 되어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용도의 순수한 결사신앙을 용납하지 않고 이용도로부터 위기의식을 느끼며 밥그릇을 빼앗기지 않으려 바동대다가 결국 의인의 머리를 돌로 때린 교계의 왕자들이 우상숭배 강요에 저항하지 못했던 것은 그리 이상할 것도 없다.

   그렇게 하여 우리의 역사는 혼란과 격정, 탄식을 지나 오늘에 이르렀다. 21세기 초 '오늘의 교회'는 어떠한가? 성도들을 제 소유로 여기거나, 하나님의 말씀과 말씀에 명백히 드러난 주님의 뜻보다 자기의 임의에 따라 교회를 다스리려는 사람은, 그가 지금 얼마나 높은 자리에 있고 자기를 높게 생각하고 있든지, 환난 날이 오면 가장 먼저 주님께 등을 돌릴 자요, 많이 가졌었기에 심판도 크게 받을 위태로운 사람이라고 역사는 힐끗힐끗 눈길을 보내오누나. '그날'이 오면 숨은 동기는 만천하에 드러난다. 그러니 하나를 보고 열은 몰라도 하나만큼은 알자. ㅡ 평온의 때에 희생을 하지 않는 지도자는 환난의 때에는 결코 희생을 할 수 없으며, 평온의 때에 타인의 희생으로 자기가 사는 지도자는 환란의 때에 눈에 뵈는 것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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