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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주로 향하는 순례자들의 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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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apocmc 작성일18-04-26 11:57 조회2,58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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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노회는 이용도를 평양에 들이지 말자로 모의하였고, 이 소식은 일파만파로 퍼져나가며 평양을 탄식의 스모그에 가두었다. 가만 두었다가는 평양 전체가 이용도를 좇을 것 같으니 급히 이용도를 조선교계에서 매장하는 시도였다.

   그러나 하늘은 이런 결의를 비웃는 듯, 평양에서는 금족령이 떨어질 때 안주에서는 성령의 불이 떨어져 은혜의 도가니가 되었다.

   안주 집회 후에는 평북 북진이었고, 북진 이후에는 10월 23일에서 29일까지 황해도 해주 남본정(감리)교회에서 부흥회가 열렸다. 황해노회가 황해도의 장로교회들은 이용도를 들이지 말라고 엄포하여 황해도에서 이용도의 집회가 뜸하다가, 황해도의 감리교회에서 집회를 하게되니 "북진서, 숙천서, 안주서, 그 외 여러 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고, 심지어 700~800리에서 온 학생들과 부인들도 있었다.

   아래의 글은 이용도의 집회에 가기 위해 평양에서부터 해주까지 약 300리를 가는 과정을 기록한 간증이다.


   때는 1932년 10월 20일경이었다. 각지로 돌아다니던 나는 집에 와서 몇 날째 쉬고 있던 중이다.

   그런데 22일 오후에 신앙의 동지 남녀 11인이 멀리 숙천에서부터 한 무리가 되어 가지고 내 집을 찾아왔다. 들으니 이용도 목사께서 23일부터 해주에서 부흥회를 인도한다는 소식이 있으므로, 갈급한 영의 애탐을 참을 수 없어 도보로 해주로 가는 도중에 나의 참가를 원하여서 들리었다는 것이다. 청년 남녀들도 있지만 60이 넘으신 노파도 섞인 이 무리는 300리의 험곡원로(險谷遠路)를 도보로 답파한다는 데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에는 일행을 향하여 이제라도 이 길을 그만두라고 권해보기도 하고, 나는 못 가겠다는 말도 해보았으나, 도(道)에 주리고 성자의 그리움에 애타는 이 무리는 "절대 물러나지 않고 아무래도 간다, 다 안 가면 나 혼자라도 간다"는 사람이 10여인임에 나는 동하여 그 일행에 참가하기로 하였다.

   내일부터 집회가 시작이므로 오늘밤을 밤새도록 걸어 내일 아침에는 해주에 도착하여야 한다니, 아무리 날라간다고 해도 300리 길을 하루 밤에 주파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평양ㅡ사리원 간은 기차를 타기로 하여, 6시에 일행이 사리원에 도착하였다. 여기서부터 해주까지 170리를 오늘밤에 다 걸어 내일 아침에는 해주 집회에 참여하자는 것이다. 아득한 200리 길을 방향도 모르고 노정도 모르는 우리는 이 밤에 걸으려고 길에 나섰다.

   사리원 거리를 지나면서 우리는 묵도하였고, 신작로 왼편에 있는 공동묘지를 바라보면서는 인생의 무상에 또 한 번 묵도하였다.

   몇 리 안 가서 벌써 천지가 어두워온다. 우리들의 머리털은 흥분에 일어서고 우리의 가슴은 감격에 울렁거린다. 오! 어두워오는 이 밤 가물가물해가는 망연한 앞길.

 

내 주를 가까이 하려 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내 일생 소원은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2절, 3절을 계속해서 부르고 4절까지 마치고서는 또 1, 2, 3, 4절을 되풀이하는 것이었다. 찬송소리가 높아짐에 따라 우리의 걸음은 빨라지고 우리의 마음은 용기에 날뛴다.

   그러나 점점 어두워오는 천지는 우리들의 중심에서 한숨을 자아내지 않는 바도 아니었다. 지명을 잘 모르니 어디인지 자세히는 모르나 상해ㅡ금산 간이었던 듯하다. 뒤에서 엔진소리와 함께 한 대의 자동차가 우리를 따라 점점 가까워져 온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것 때문에 뒤를 돌아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차가 점점 가까이 오다가 우리 일행의 뒤에 와서는 경적을 크게 울린다. 우리는 이때에도 찬송가를 크게 고창하고 있었다.


십자가 군병 되어서 예수를 좇을 때

무서워하는 맘으로 주 모른 체할까

그리스도 내 구주여 나를 속량했으니

내 십자가를 벗은 후 저 면류관 쓰리


   우리는 찬송은 부르면서도 자동차의 경적소리는 들었다. 그래서 차가 지나갈 길은 충분히 내어주었다. 그런데 보니 웬일인지 차가 정거를 한다. 운전수가 어두운 밤중에 10여 명의 남녀가 대로상에서 큰 노래를 부르며 야단치는 것이 이상히 생각되었던지 그는 차를 세웠다.

   "어디를 가시는 분들이오? 이렇게 어두운 밤에 여러 분이?"

   "해주에서 우리의 숭배하는 성자 이용도 목사께서 부흥회를 인도한다기에 거기를 가는 중입니다."

   그랬더니 뜻밖에도 친절한 말씨로 다 차를 타라고 한다. 자리가 불편하고 또 화물차이매 타시라는 것이 인사는 아니지만은, 이 차라도 원하신다면 태워주겠다는 것이다. 감사히 받아 우리는 그 차를 탔다. 이 차를 타고 재령읍까지 약 10리 길은 짧은 시간에 어려움 없이 갈 수가 있었다.

   이 차는 재령읍 모 상회의 차였다. 어린이에게 물 한 술 주는 것을 크게 축복하시는 주님께서 이 저녁에 이 일을 한 운전수를 길이 축복하시기를 빌면서 우리는 재령읍에서부터 또 걷기 시작하였다. 더 한층 용기를 내어 해주를 향해 걸음을 재촉하였다. 재령경찰서 앞을 어두움 속에 나는 듯이 지나고, 사당고개를 또 번개같이 지났다.

   우리의 입에서는 찬송소리가 더욱더욱 높아간다.


날 구원하신 예수를 영원히 찬송하겠네

저 죄인 어서 이리와 주 사유하심 받아라

구하라 주실 것이오 찾으라 얻을 것이라

내 죄로 상한 영혼을 주 온전하게 하시네


   우리의 발은 찬송소리에 맞추어 사뿐사뿐 전진하고 우리의 마음은 묵도 속에 의기가 충천이다.

   몇 시간이나 걸었는지 모르나, 어느덧 우리는 신원 고개에 올라섰다. 황해도의 분수령이라는 이 지대에 이르러 우리는 다 길에 엎드려 함께 기도 드렸다. 그리고 신원 거리에 이르러 저녁 겸 밤참으로 국수를 한 그릇씩 시켜 먹고 서로 독려하여 또 길을 떠났다. 여기서부터는 참으로 험로난행(險路難行)이요, 악전고투(惡戰苦鬪)다.

   100리 길을 걸어온 몸, 주렸다가 요기나 겨우 한 배는 맥이 빠지고 졸음이 끄덕끄덕 오는 것이었다. 다리가 아파서 가끔가끔 주저앉는 노파, 발에서 피가 나서 버선이 다 젖었다는 젊은 부인, 졸면서 가다가 길가에 선 나무를 들이받아 코피를 흘리는 청년 등, 이야말로 결사적 강행이요, 사신(捨身)적 돌진이다. 그래도 이 길 떠난 것을 후회하는 자는 하나도 없고, 누구를 원망하는 소리는 꿈에도 안 들린다. 찬송소리만 더욱더욱 깊은 밤의 산천을 울리고, 우리의 목은 밤새도록 부르는 찬송에 거의 반 다 쉬었다. 그러나 우리의 심중은 더욱더욱 열성에 불이 붙었다.


천당에 가는 길 험하여도

생명길 되나니 은혜로다

천사 날 부르니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야곱이 잠 깨어 일어난 후

돌단을 쌓은 것 본받아서

숨질 때 되도록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정 힘이 들 때는 큰 길바닥에 다 엎드려 울며 기도 올리고, 몸을 추어 일으켜서는 찬송가로 채찍질하며 무거운 몸을 실은 힘든 발을 옮기어 범새도록 걸음을 계속하니, 새벽녘에 이르러는 희미하나마 달빛도 이따금씩 나타나 우리를 위로 격려하는 듯, 우리 길을 인도하는 듯하였다.

(계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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