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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묵상집

상품화된 진리 직업화된 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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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apocmc 작성일18-05-04 13:27 조회2,52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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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노회 사건이 선량한 일반 교우들에게는 어떤 감정과 생각을 갖게 하였는지 확인해보자. 변종호는 익명으로 그를 보호했다.



   PHR 씨로부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그 생명을 내어놓은 하나님의 충복이시여, 사랑하는 나의 형님이시여, 걸어가소서. 위에서 움직여 주는 그대로. 당신의 신앙경험 그대로. 걸어가소서.

   사람들은 사람의 지식경험에 교만해져서 사람의 지식 이전에 존재하던 하나님의 진리를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으니 새로운 진리가 나타나매 저희들은 인간 이후의 지식경험 사실에 비춰보아 그 경험적 척도로서 난측(難測)되는 물건이면 뱉어버리고 또 마귀의 역사라고, 허위적 독단이라고! 비과학적이라고, 비진리적이라고, 마술적이라고 하여 매장해버리기에 분주한 것이었으니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그러하였던 것입니다. 선지자나 예언자는 모두 그 시대의 인간적 경험사실보다 모두 위대한 사실을 말하였었으니 그들이 그때 사람들에게 돌을 맞아 당연하였던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그때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들이 알고 있는 신앙 경험보다 오묘하고 엄청난 것을 말하셨으니 그때 사람의 지적 경험이 그 진리를 소화하기에 너무도 어려웠던 것이 아닙니까.

   그리하고 그들은 예수를 '바알세불이 들린 자'라고, '무교회주의자'라고, '죄인과 함께하는 자'라고 갖은 명비(名碑)를 다 어깨에 지워서 골고다로 보내기를 힘썼던 것이외다. 그리하여 그가 말씀하신 그 진리와 생명과 빛을 소유하여 자기의 물건을 삼아 그 생명과 진리와 빛 속에서 살라고 하지는 않았던 것이 아닙니까.

   옳습니다. 현대는 신앙상으로 보아 말세적 세기를 당한 때이오니 저들은 현재 자기네들의 소유한 바, 신조, 교리, 신앙경험 사실 그것이 절대 완전한 것으로 알아 만족하여 있습니다. 그것도 실상 그리스도의 것이 아님은 물론입니다. 그리고 그 형(形)과 외(外)의 신앙 척도는 나타나는 진리의 사실을 도량함에는 완전무결할 척도의 행세를 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실상은 저들이 실(實)을 소유하기 위하여 허(虛)를 배격하는 것이라고 호언장담하나 허를 얻기 위하여 실을 파괴하는 것이었으며 진(眞)을 소유하기 위하여 사(詐)를 치는 것이라고 하나 허에서 만족하기 위하여 실을 매장하기에 급급한 저들이 아니었나이까.

   오호(嗚呼)! 통재(痛哉)! 의인의 눈에서 눈물을 금하기 어려우며 뜻있는 자의 가슴에서 피가 용솟음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현대의 OO란 진리자의 집단체가 아니요, 진리자를 매장하기 위하여 존재한 OO의 책원지(策源地)가 아닙니까. 교회를 시장화하여가지고 진리를 상품화하여 철없는 신도들을 고객으로 '그 상품화된 진리'를 팔아 그것으로 자기네들의 구복(口腹)을 채우려는 것이었으니 정당한 입장에서 보는 자, 어찌 '종교는 아편이라'는 단안을 내리기에 주저하리이까.

   저들은 적은 것에 걸리어 큰 것을 삼키지 못하여 고민하는 과정에 있사오니 조그마한 사실을 의논하기 위하여 큰 진리를 그르치는 것이올시다.

   그리스도의 사랑, 생명, 진리. 이것을 위하여 저희들의 존재적 가치를 느끼고 그것을 먹고 마시어 그 생명에서 살며 그것을 전하여야겠다는 참된 사명감에 움직인다면, 저희들이 어찌 그렇게 조그마한 사실들에 걸리어 그 사실을 용인하고 남음이 있을 텐데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사랑과 진리에서 벗어나는 일을 감행하고 있으리이까.

   아, 저들은 빛보다 어두움, 넓은 것보다 좁은 것, 사랑보다 미움, 화목보다 투쟁, 진리보다 허위, 이것들을 소유해야 만족하려 하며 또한 만족을 느끼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며칠 전 형님을 찾아뵈옵고 돌아온 후 이 붓을 드는 것입니다. 무슨 말을 먼저 썼으면 좋을지? 붓을 들기는 들었고 또 쓰기는 여기까지 써왔으나 나 역시 무슨 말을 썼는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형님 앞에서 그 모든 사실을 듣고 앉아있을 때 감격, 아픔, 쓰림, 안타까움, 눈물, 울음, 이 모든 분위기에 싸여있었소이다. 중심에 움직이는 말이 많았으되 나는 무언으로 앉아있었던 것이요, 기도할 때 내가 기도하고 싶은 말 곧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 호소하고 싶은 바가 많지 않음이 아니었으되 무언 그대로 지났던 것이외다. 또 한 가지, 형님의 기도 그것은 모두 나의 기도, 그것이었으므로 사람으로서 하나님 앞에 그런 사실을 알고 기도한다면 형님의 기도 그것으로 넉넉하였던 것이올시다.

   형님, 나는 아직 그리스도의 생명과 진리의 지극히 적은 부분의 한 토막도 소유할 듯 말 듯한 아주 보잘것없는 상태에 있는 자요, 그 전체를 만져보지도 못한 자이오니, 어찌 그 진리 전반에 대한 말을 감히 할 수 있으며 현대 교회의 안과 밖에 대하여 또는 그 역사적 과정이라든가, 현실적 진행에 대한 관찰의 지식이 전무한 터이오니, 어찌 교회에 대한 비판이나 그 지도자층 종교가 에 대한 비판을 감언(敢言)할 수 있사오리까. 나는 아직 현대 교회의 의식, 교리, 신조에 순복(順腹)하여 당분간 만족하려 하는 자요, 그 도정에서 무언의 탐구자로서 진리와 생명을 캐어 그것으로 나의 생명을 삼아 그 생명에서의 생활 그 자체를 동경하며 만족하려는 자이올시다.

   그러나 형님, 주위가 너무도 시끄럽고 분분하오매 무언을 깨뜨리고 이렇게 유언의 탈을 쓰고 나서게 되는 것이올시다. 무언의 필요를 느끼면서 유언치 않을 수 없는 나의 고민은 적은 것이 아니올시다. 그러나 형님, 이것을 보시어 과히 나무라지는 마시옵소서.

   형님, 나는 그리스도의 진리를 차츰차츰 찾아 들어갈수록 그 진리는 참된 생명이요, 사랑의 빛인 것을 알게 되나이다. 그러나 그 진리를 담아가지고 있다는 현대 교회와 그 진리를 전한다는 현대의 다수의 종교가들에게서는 생명과 사랑의 진리를 찾을 수 없는 것이었으니 나의 놀람은 날마다 그 도가 높아간다 해도 거짓말이 아니올시다.

   우리의 생활의 외양을 본다면 우리는 벌써 천사가 되었을 것이올시다. 찬송, 기도, 설교, 복음의 해석, 모든 것이 모두 예수의 진리를 중심으로 날마다 움직이는 것이었으니 이 살과 이 피, 이 생명 전체가 벌써 그리스도의 것이 되어 마땅한 것이 아니오니까. 그러나 가르치는 자나 배우는 자나 누구에게든지 그리스도의 생명에서 움직이는 자를 찾을 수 없사오니 이것이 큰 모순이 아니고 그 무엇이오리까. 모두 다 진리와 생명과 빛과 사랑과 그리고 봉사, 희생들을 말합니다. 가르치고 배우고 기도하고 찬송합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 일들을 하는 자 없고 그렇게 해보려는 자도 없사옵니다. 나는 다른 사람을 보아 그렇게 아는 것보다도 나를 보아 먼저 알고 있습니다.

   나의 신앙은 생명적 신앙에서 떠나 기계적 신앙, 간판적 신앙, 직업적 신앙에 떨어져 있사오니 나는 신앙하여 내 생명이 그 신앙 생활 위에서 살려고 하는 것보다 그 신앙이란 간판 아래서 진리를 상품화하고 전도를 직업화하여 장래나 육적 생명의 직업적 고민을 제거하려는 야욕이 중심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었나이다.

   그렇지 않다고 스스로 변명하고 또 하고 싶으나 내가 그리스도의 생명과 진리 위에서 살지 않고 다만 '그것이 무엇인가, 예수는 그런 사람이요, 그 진리와 무저항주의란 이런 것이다'를 의논만 하고 구경만 함에 그치고 있사오니 그 변명이 무슨 효과가 있사오리까.

   형님, 나는 신앙을 의논만 하여 만족하지 못하며 진리를 말로만 하고 전하여 조금도 위로나 만족을 얻지 못하나이다. 그래서 늘 고민이올시다. 이 고민 때문에 내가 늘 책상머리나 자리에 누워서 눈물질 때가 많은 것이었나이다. 내가 며칠 전 형님을 만나서 흘린 눈물도 그 반은 이러한 의미의 눈물이었다고 생각하나이다.

(계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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