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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묵상집

경건의 극치 무모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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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apocmc 작성일18-06-07 17:29 조회2,72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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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인서 씨에게

   형이 나를 사랑하는 줄을 소제도 모르는 바 아니외다. 나를 사랑하는 자 중에 가장 정당히 사랑하는 자 중의 하나임을 내가 압니다.

   형이 나를 사랑함은 나의 작전계획의 묘(妙)에 있는 것도 아니요, 전법(戰法)의 기(技)나 승산의 모(謀)등에 있는 것도 아니었을 것이니, 소제는 본래 어떤 작전계획에서부터 움직인 것도 아니요, 어떠한 승산을 가지고 이렇다 할 전법에서 출발하였던 것도 아님을 오형(吾兄)은 잘 아시리이다.

   나는 무모무법(無謀無法)의 한 노예이었으니, 다만 명령에 순종한다는 것만이 나의 일일 뿐이었나이다. 나는 과거도 그러하였거니와 현재도 그러하고 또 미래에 있어서도 별 도리를 ​​가지지 못할 것이 사실이올시다. 그런고로 실상 일하는 자는 위에 있는 자요, 나는 그의 종일 뿐이외다.

   나에게는 내년도, 내일도 다 없고 늘 오늘뿐인 것 같으외다. 세상 법대로 말하자면 소제는 변통 없는 못난이일 것이외다. 나는 되기를 그런 일을 감당하게 되지 못하는가 하옵니다.

   형은 혹 형의 모계(謀計)대로 진행하여 왔다고 할까, 모르거니와 나는 그저 아무 계책이 없이 그저 그날그날 순간순간의 지시에 따라왔을 뿐이니, 금일의 일은 어제는 마음먹지도 못하던 사건이곤 하였나이다. 주님의 계획은 벌써 있었고 승산은 벌써 위에 있었나이다. 그것의 전체를 알고 나서 비로소 출전할 내가 못 됩니다. 모든 것이 다 그의 전법과 모계​(謀計)에서 되지 않는 것이 없는 줄 믿고 그냥 그날그날 시키는 대로 나는 그에게 순종할 뿐이외다. 이번 모든 일도 다 주의 전법 중에 들지 아님이 없는 줄 아나이다. 어떤 때 혹 후퇴하고 실기하고 패전하는 것 같으나 결코 아니외다. 후퇴 같으나 전진이요, 패배같으나 승리이었나이다.

   원컨대, 오형(吾兄)은 안심하소서. 작년에 일하신 주님이 금년에 일하시었고 금년에 일하신 주님이 또 내년에 일하실 것이외다. 내일 염려는 다 주께 맡기소서. 오늘 염려로서 오늘에 족한 것이었나이다.


   제1신을 보고.

   소제의 무모(無謀)와 또 암매(暗昧)를 들어 충고하심에, 두려운 마음으로 나의 가슴에 손을 대고 "오 주여, 나는 과연 무모한 하졸(下拙)이요, 암매한 우부(愚夫)로소이다" 하니, 홀연 위로부터 "소자야, 안심하라"가 들리어 조금 두렵던 마음은 평정(靖)을 얻었나이다.

   오형(​吾兄), 나는 나의 무모와 또 어두움에 눈이 뜬지 오래였습니다. 언제든지 나는 그런 자임을 내가 알아왔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나 자신이나 혹 사람이 고쳐주지 못하고, 늘 주 나에게 손을 대어 가르치셨나이다. 이제 주께서 오형을 선생 삼아 소제를 가르치심이 있기를 바래 마지 않나이다.

   "하늘에 계신 주님이 전체요, 내 안에 계신 주님이 가장 가까운 주님이었나이다"라고 하신 형의 이 말은 진리외다. 나의 주님은 하늘에 계시고 또 나의 심중에 계셨나이다. 나의 심중에 내재(內在)하사 진리가 되고 말씀이 되고 판단이 되고 혹 예언이 되었나이다. 고로 많은 사람이 내 말을 내 말로 듣지 않고 주님의 말씀으로 받았나이다.​

   내 속에 계신 주님은 또 각 사람의 심중에 계신 주님이었나이다. 남자의 속에도 내재하시고 또 여자의 속에도 내재하셨나이다. 구름 속에도 당나귀 속에도 내재하셨나이다. 나는 그때 그 당나귀가 내 앞에 나타나 나를 책망하고 나를 권고한다면 물론 나는 그 앞에 엎드려 "오 주여, 나를 가르치시옵소서" 하겠나이다.

   그러한다고 하여 날보고 "저놈은 당나귀 앞에 엎드려 당나귀 보고 주님이라고 한다"고 욕할 자가 있을 것이나, 나의 주님은 곧 그 말씀 곧 그 진리임을 나는 앎에 나는 그 말씀의 본체를 주님이라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아이 속에서도 주님을 발견하고 혹 도적과 음부의 속에서도 주님을 발견하였으니 주는 그들 중에서도 내재하시사 진리를 언표(言表)할 수 있었음이외다. 그렇지만 또 목사의 입에서, 선생의 입에서, 주의 사도의 입에서도 마귀를 발견하였으니 이는 마귀도 그 중에 내재할 수 있었음이외다.

   원래 인간에게는 진리가 없는지라. 있다면, 누구에게든지 그것은 주에게서 나온 것일지라. 나는 '스 씨'(Swedenborg 氏)의 것이라 하여 그냥 버리는 자도 아니요, '내촌 씨'​ (內村鑑三 氏)의 것이라 하여 그냥 침 뱉는 자는 아니요, 여자의 것이라 하여 다 천시하지도 못하나이다. 진리면 나는 다 주의 것으로 받아왔나이다.

1932년 11월 24일

양주 제4일 한 형제의 편지를 받고

 

   양주 부흥회 중 어제 김인서에게 편지를 보낸 이용도는 오늘 조금 누그러진 목소리로 다시 붓대를 잡는다. 마음에 이 문제가 계속 걸렸던 걸까? 그는 김인서의 충고가 사랑에서부터 오는 것이라 믿었다. 그럼에도 김인서의 말대로만, 누구와의 관계를 그렇게 끊지는 못했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나 보다

누가 잘못하면 메어칠 줄 모르고

내다버릴 줄 모르는 사람

잘못한 사람의 잘못보다

잘못했다 하여 매장하는 사람들의

더 큰 잘못이 보이는 사람

그는 그런 사람이었나 보다


   지난 번 편지가 소위 '한준명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면 이번 편지는 제법 구체적으로 '주여 사건'이 암시되어 있다. 변종호가 설명하는 '주여 사건'의 대략은 다음과 같다.


   1932년 가을 용도목사는 동해안(금강산) 방면에 집회 인도차로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원산에 들렸다(이때에는 금강산 동쪽을 여행하려면 경원선 철도로 원산까지 가서 거기서 보도로 동해안 노선을 통과하는 길 밖에 없었다). 원산에 들른 용도목사는 원산에 있다는 기도의 동지들을 찾아보기로 하였다.

   어떤 집에 이르니 기도의 동지라는 이들 7~8인의 남녀가 모여 있었다. 용도목사의 방문을 받은 동지들은 예배를 드리기로 하였다. 찬송이 불러진 후 기도가 시작되었다. 통성기도가 한참 진행되었을 때, 음성이 들렸다. 용도 목사의 곁에 앉았던 여자의 입에서,

   "용도야 너는 주님을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좀 더 충성하고 좀 더 고생을 당하여라"한다.

   이때에 용도목사는 울음을 터뜨리며 "주여! 저는 죄인이로소이다. 주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가식 밖에 없었고 복음을 전한다고 하면서도 게으름과 대접 받는 일밖에 없었나이다. 이 죄인을 용서하시고 눈물과 땀을 주시어 주님과 교회를 위하여 죽도록 충성하게 하옵소서" 하며 울음 섞인 기도를 길게 계속하는 것이었다.

   ​이날 이 기도회의 사실이 문제가 되고 사건화가 된 것이다. "용도 목사는 여자 보고 주님이라고 했다. 사람 앞에 엎드려 주님이라고 했다. 정신이상자다. 이단이다" 등등 별의별 비평과 험구와 망담으로 욕하고 때리는 것이었다.


   변종호 외에 이호빈도 이 사건에 대한 정보를 준다.


   용도 목사를 배척한 것은, "이단"이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류명화(柳明化) 여인을 "주님"이라고 한 것을 증거라고 내세웠습니다 … 그에 대한 비난에 대해서, 용도 목사의 답은 분명 이러했습니다.

   "어떤 사람을 주님으로 부를 수 있도록 정신 빠진 사람은 아닌데, 혹 그의 마음속에 계신 주님을 보고 '주님이여' 할 수 있다"고.


   여기에는 두 가지 논란이 될 수 있는 거리가 얽혀있다. 하나는, 이용도가 사람에게 '주여'라고 했다는 문제인데, 이에 대한 대답은 김인서에게 보내는 오늘 편지에 담긴 이용도 자신의 말이 있고, 위에서 본 변종호와 이호빈의 설명이면 충분히다. 이용도는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 속에 계신 하나님께 '주여'라고 한 것이다.

   다음으로 논란이 될 수 있는 부분은, '어떻게 하나님이 어느 사람을 통해 말씀하실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하나님의 영이 어느 사람에게 임하여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구약 선지자적이고 신약 예언자적인 이런 것이 어찌 가능한가?' ㅡ 이는 씨름해볼만한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해 "가능하다"고 대답하는 입장이 한준명과 원산의 무리들이다. 이들은 주님께서 어느 사람을 통해 말씀하실 수 있다는, 즉 '예언'이라는 성령의 은사를 받아들인 사람들이었다.

  

   ​당시대의 교회사적 배경

   19세기 중엽부터 20세기 초는 미국에서 성결운동(the Holienss movement)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때였다. 이들의 주장은 대개 믿음으로(by faith) 성경의 첫 번째 역사인 중생(regeneration)을 얻게 되고, 다시 믿음으로 성령의 두 번째 역사인 온전한 성화(entire sanctification)를 얻게 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배경 아래서 20세기의 첫머리에 획기적인 사건이 일어났으니, 1906년 미국 로스엔젤레스의 아주사 거리(Azusa st.) 312번지의 버려진 교회에서 흑인 감리교 목사인 세이무어(W. J. Seymour)의 인도 가운데 성령의 폴발적인 역사와 함께 방언을 말하는 일이 현저하게 나타났다. 이것을 성령세계라 부르든 혹은 성령의 불이라 부르든, 여하튼 그 체험자들은 주장하기를 성령께서 신자 안에 역사하신(성령세계를 베푸신) 증거는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성화(sanctification, 혹은 성결 holiness)에서 방언으로 초점이 이동하자 성결파들은 방언파를 거세게 비판하고 나섰다. 감리교 배경의 대표적 성결파 교단인 나사렛교회의 본 명칭은 '오순절 나사렛교회'(the Pentecostal Church of the Nazarene)였으나 방언파의 확장과 함께 '오순절'(Pentecostal)이란 단어가 방언파를 일컫는 낱말로 바뀌자, 1919년 총회에서 '오순절'이란 단어를 교단명칭에서 떼어버린다. 성결파 입장에서 방언이 성령세례(혹은 회심 이후 성령의 두 번째 역사)의 증거라는 주장은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20세기 초두, 불쑥 무대중심에 나타난 방언은 서방 교계에서 큰 논란이 되면서 열렬한 미움과 열렬한 사랑을 동시에 받았다.

   남감리회 피도수 선교사(1902~2012)는 '원산파'를 면대면한 적이 있었다. 먼저 피도수의 신학적 배경을 살표보면, 그가 미국에서 신학교 진학을 고민할 당시 감리교 계통의 신학교는 '자유주의'가 팽배하여 갈곳이 없어서 장로교의 프린스턴신학교(Princeton Thelogical Seminary)에 들어갔다고 한다. 1920년대 초는 프린스톤이 아직 보수신학을 견지하는 때였다.

   당시 미국의 장로교회는 대체로 방언, 병고침, 예언 등의 초자연적 은사는 1세기 사도시대 이후로는 성경계시의 완성과 함께 종결되어 오늘날에는 더 이상 주어지지 않는다는 은사중지론(cessationism)의 입장을 갖고 있었다. 피도수가 교육을 받은 배경은 ㅡ 비록 그가 철저한 웨슬리 신학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 해도 ㅡ 오순절적 신앙형태를 배격하는 보수적 장로교 신학교였다. 또한 성화(성결)를 강조하는 감리교인의 입장에서는 방언, 신유, 예언 등이 강조되는 오순절운동은 환영할 일이 못되었을 것이다.

   그런 피도수는 이 '조선의 신비주의자들'의 예언하는 신앙 형태에 처음 접했을 때 거부감을 느꼈다. 1936년에 그는 이 집단의 "운동이 하나님의 역사임을 입중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 운동을 인정한 시무언은 실수를 했다"고 회고했다. 혹 '예언의 은사'를 인정한다고 해도, 원산의 무리들이 예언한 내용 중에는 틀린 것도 있었기에(가령, 이용도에게서 태어날 아들이 큰일을 할 것이라 했는데 딸이 태어났고 그 아이는 곧 세상을 떠났다), 신명기 18장 20~2절에 따라 결코 그런 예언자는 참되게 인정될 수 없다고 했다.

   당시 예언이나 방언 같은 성령의 기적적 은사들은 무척이나 낯선 것이었다. 이에 개방적인 혹은 이를 참되게 인정하는 이들은 서방 교계에서도 손가락질을 받으며 쫓겨났다. 20세기 초 오순절파는 "사탄의 설교자, 사기꾼, 강신술사,  미혹자, 요술사 그리고 잡다한 비렁뱅이들"이었고(성결운동 지도자 W. B. Godbey), "절대로 하나님에게서 오지 않은 것, 소돔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이었으며(세대주의 성령례파 R. A. Torrey), 또한 "사탄의 마지막 구토물"(성경교사 G. C. Morgan)이었다.

 

​   현시대의 선교사적 배경

   오늘날 세계 최대의 (독립교회 포함)개신교 대륙인 (사하라 이남)아프리카와 개신교가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남미는 모두 방언, 신유(병고침), 예언의 은사 등을 인정하고 활용하는 오순절파가 최대의 활동을 벌이고 있다.

   2014년 미국 휘튼 신학회의(Wheaton Theology Conferance)에서 영국 버밍험 대학교의 앨런 앤더슨(Allan Anderson) 교수가 '세계오순절신앙'(Global Pentecostalism)이란 주제로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2014년 오순절적 신앙 인구는 전 세계에 약 6억 3천만으로, 이는 개신교와 천주교와 정교회를 다 합친 수의 1/4에 해당한다. 2025년에는 8억 명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이들은 교리에 갇히는 경직성보다 성령의 인도하심 속에서 영적 체험을 갈망한다. 이들은 공통의 교리보다는 공통의 경험을 통해 뭉친 이들이다. 오늘날에는 이런 신앙 유형이 그리 낯설지 않으나(오순절적 신앙형태를 비판하는 입장이라도 그들이 기독교가 아니라고까지는 하지 않는다), 이용도의 때에는 한국인 신자들만 아니라 선교사들에게도 낯선 신앙이었다.

 

    이용도 때의 교회적 배경

   1959년 최초의 한국 개신교회통사를 저술했던 변종호는 1972년 최초의 한국 오순절교회통사인 [한국의 오순절신앙운동사]를 저술하면서 그 동안 말하지 않은 이용도와 관련하여 되어졌던 중요한 사실을 고백했다. 이용도의 부흥 역사 중에 '방언'이 일어났었다는 것이다.


   그때의 한국교계의 형편 속에서 의미 모를 발성인 방언이란 말은 입 밖에 낼 수도 없었다. 광언(狂言)이요 망담이라고 광인으로 돌려놓고말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필자가 직접 견문한 바에 의하면 오늘날의 방언이란 것이 그때에도 얼마든지 있었음을 우리는 확언 단언한다.

   1931년 겨울 평양 명촌교회서 직접 본 일인데 밤 예배를 끝내고 일동이 통성기도를 하는데 큰 소리로 외치는 기도소리 중에 무슨 소리를 하는지 그 의미를 모를 기도소리가 여러 곳에서 들려옴을 듣고 필자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도대체 저거 무슨 기도소리가 저 모양인가고 놀라기도 하고 비웃기고 하도 책하고 싶기도 했다.

   그래서 예배가 끝난 후에 유력한 신앙가인 친우에게 그 사실을 말하니 자기도 그런 일을 경험해본 적도 있고 이 목사님의 집회에는 그런 일이 가끔 나타나는 모양이라는 것이었다. 그 후 그해 연말에 산정재집회에서도 통성 기도 때에 귀를 부인반으로 고요히 기울이고 들으니 역시 울음 섞인 열정적인 기도를 높은 소리로 외치는 기도 속에는 의미 모를 외침이 상당이 들려오는 것이었다.

   1933년 봄 이용도 목사의 해주에서의 이 세상 마지막 공집회 때에 예배 필(畢) 후 교회의 유지와 유력한 청년들이 이용도를 불러놓고 치려고 하며 죽여버리겠다고 위협한 이유가 통성기도 시간에 많은 여성도들이 의미모를 광언(狂言)으로 교회를 문란케 하고 예배를 소란케 한다는데 있었다는 것이 그 예배에 참석했던 친구들이 전하는 소식이었다.

   필자 이 사정과 이 소식을 40년간 가슴에 혼자 묻어두고 이제까지 말하지 않은 것은 세상에서 이용도를 무리하게 모욕하고 매장하려 들기에 형세를 관망하는 신중한 태도에서 침묵을 지켜왔으나 이때에 이르러서는 특히 내가 죽기 전에 이 사실을 한번은 말해둘 필요가 있으리라고 생각하여 여기서 비로소 이 사실을 처음으로 공개하는 바이다.

   한 가지 말해야 할 것은 이 목사를 둘러싼 주위의 열신자들에게서 이런 현상이 종종 나타났으나 어느 신도의 입에서도 "방언"이란 말이 나온바 없었고 이용도 목사 자신의 입에서도 방언이란 것을 말하는 것을 들어본 일이 없었고 이 목사 지신은 의미 모를 발성이나 방담을 하는 것도 들어보지는 못했다는 점이다. 행 2:4절의 방언이란 것을 몰라서 그랬는지 방언의 은사가 나타남을 알면서도 짐짓 입 밖에 내지 않았는지 필자가 물어본 일도 없고 이 목사가 설명해줌을 들어본 일도 없음은 40년 가슴속에서만 움질거리는 의문이요 수수께끼이었다.


  

   변종호는 이용도에 앞서 길선주와 김익두가 오순절적 성령역사의 맥을 이었으되 방언은 없었다가, 이용도의 때에 나타났다고 하면서 이것을 한국의 오순절교회 태동과 관련시켜 해석하기를,


   이용도 목사가 그렇게 참되고 강렬하게 성령의 불의 역사를 하는데 한국 기독교계가 그렇게 부당하게 악랄하게 구박 학대를 한 것이 시기 질투 등의 인간악의 발동에서 온 것이 사실이지만 또 한편으로 생각하면 이용도의 그 천하를 움직이는 감화력이 어쩌면 벙언 신유 같은 형태로서 한국 교계를 뒤흔들지나 않을까 하는 나쁜 생각에서 부당한 구박과 지나친 학대를 이용도의 성령의 역사에 가한 듯한 형적도 없지 않음을 우리는 본다.

   말하자면 한국 땅 어느 구석에서 퍼지기 시작한 오순절운동(방언, 신유)이 소위 정통신앙가들로 하여금 이용도를 때리게 하는 심적 요소가 되었는지 모르겠고 이용도가 무리하게 구타 당하는 것을 보면서 오순절 신앙의 선교는 멍하게 서서 아무 진전도 못 보이고 답보상태를 계속한듯이 느껴지는 바도 없지 않았다.


   이용도 '몰락'의 원인에는 교계 왕자들의 인간적 질투만이 아니라, 성령의 역동성이 오순절적 형태로 나타나는 것에 대한 기성 교회 지도자들의 두려움도 있었다는 것이다.

   즉 이용도 목사가 당시 배척받고 이단의 십자가에서 화형을 당하는 것은 '내' 성도들이 너무도 경건한 이용도를 따라가는 것에 대한 질투와 분노, 이용도가 강단에서 던진 목회자들을 향한 날카루운 ㅡ 그리고 무척이나 정확한 ㅡ 비판과 회개의 외침 등도 분명 있었지만, 1932년 즈음부터는 여기에 '방언의 나타남'이라는 피해갈 수 없는 갈림길이 서서히 드리웠던 것이다.

   예를 들면, 1931년 여름 황해노회가 금족령을 내린 이유는 '이용도는 무교회주의자다'라는 것이었는데, 무교회주의자와 방언은 퍽 어울리지 않게 보인다. 그러다가 1932년 4월 평양노회는 '기도는 은밀하고 조용하게 하라'고 했으니, 열렬한 기도 '형태'에 대한 경계심이 다소간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후로 오순절적 방언과 신유의 역사는 ㅡ 이용도의 설교 내용과는 관계없이 ㅡ 성령의 강력한 역사를 수반하는 집회에 계속 나타났다. 그리고 원산파는 여기에 예언이 더해진 신앙 형태를 이해하고 소화시키던 그룹이었다.


    소란, 난리법석, 심각한 얼굴들

   소수 방언파. 소수 예언파. 오늘에 보면 별 문제도 아니었다. 오히려 이용도는 당시로서는 '혜안'이었다. 20세기 초 서방 교회와 한국에서 마귀의 거짓 역사로 비춘 신앙형태가 오늘날 남반구 기독교인들의 생활을 활기차게 하고 있고, 지금 같은 기세라면 2025년에는 전 기독교 인구의 약 1/3이 그런 형태를 띨 것으로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방언과 예언하는 형태가 좀 있었거니와 이것을 소화시키지 못하여 이단이니 사단이니 쫓아내고 매장하던 때에 이용도는 오순절적 원산파를 정죄하지 않고, 거기에도 성령의 역사가 있는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바가 있는지 겸손하게 듣고자 했다. 그들을 신학적으로 비판하고 관계를 끊으라는 압력을 받을 때는 오히려 정죄하는 사람들의 사랑없는 신앙을 보았다.

   이용도는 복음주의 구령신앙만 아니라, 무교회주의자들과 교제할 수 있는 지성, 성자적 청빈과 경건, 그리고 오순절적 면모가 있는 원산파와 어울릴 수 있는 성령의 자유로운 일하심에 대한 인정과 개방도 있었다. 이 모든 보배로운 구슬들은 진리적 사랑으로 뀌어진다. 이는 오늘날 냉랭한 지성만의 신앙인이나, 부담스럽게 심각한 얼굴의 이데올로기적 인간 혹은 열매 없는 은사중독자 타입과는 다른, 지성과 감성과 실천과 성령의 역사 등이 서로 합력하여 그리스도를 닮고 따르는 최대한의 효과를 내는 바람직한 신앙을 이용도가 보여주었음을 생각하게 한다.

   아직도 소화불량에 걸려 있는 자들이여, 비판하려면 제대로 할 것이다. 그러나 가장 좋은 길은 자기의 소화기를 튼튼하게 함으로 나의 신앙을 지키되 남의 신앙에 배 아파하지 않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용도의 동지 고(故) 이호빈 목사의 설교를 귀 있는 자 겸손히 들어 떡 하나라도 얻을지어다.


   기독교 신앙생활의 두 바퀴(고전9:15~27, 참고 12:4~31)

   본문에서 바울 사상 중 두 면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는 한없는 너그러움이다(무한대의 관용성), ㅡ 어떤 사람이든지 가까지 사귀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려는 마음. 둘째로는 내 믿음을 굳게 지키려는 마음(확신의 고집성) ㅡ 어떤 형편, 어떤 생활 속에서라도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순종하려는 마음. 이상의 두 가지 면에서 한 가지라도 빠진다면 완전한 신앙생활은 파탄이 와지는 것이다.

   즉, 고집 없는 관대한 포용성은 세속화되기 쉽다 ㅡ 마치 바람에 밀리는 노 없는 배와도 같이. 그리고 관용 없는 고집은 독선의 제왕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바퀴의 약점으로 ① 너그러운 마음뿐인 경우, 첫째, 최후의 승리가 없는 실패가 있다. 둘째, 수시로 변절하는 무절제의 창부(娼婦)가 된다. 영원한 신랑을 맞이할 수 없는 존재가 되고 만다. ② 굳게 지키는 고집성뿐인 경우, 첫째, 교만한 독재왕이 된다. 둘째, 무자비한 심판관이 된다. 셋째, 자아도취에 고질환자가 된다. 넷째, 사회에 악성암적 존재가 된다. 그러므로 이 두 바뀌가 각각 따로 구르고 있어서 발전을 막고 후퇴의 참상을 당하는 것이다. 우리 신학교 이념 중 초교파(超敎派)란 조항이 있는데, 이상의 두 바퀴를 조화시키려는데 목적을 둔 것이다. 제 교파, 제 신앙에 충실한 고집을 가지면서 타 교파와 타 신앙에 관대한 포용성을 갖고 일치 단결하는 평화의 길을 가져보자는 것이다.

   대체로 강경 은사중지론자나 '천국에 다른 교파를 허용하지 않는' 외골수적 자파(自派)세뇌자는 대개 위에서 말한 ②의 신앙형태를 보여주는데, 이 경우 성령이 없거나 매우 축소되어 '이위일체' 하나님이 된다. 반대로 성서적 충성이 없는 경우 흔히 ①의 양태를 띄는데 문제는, 기독교 정체성이 비릿해지는 것.


   현시대의 한국교계 배경

   남북 대치 상황의 현 한국 사회와 교계는 극단의 무리들로 인해 매우 혼잡한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자기가 볼 때 예언의 은사란 결코 존재할 수 없는 것이기에 '누가 그것을 인정한다면 이단(혹은 사단, 마귀, 무당, 강신극, 신접극, 미혹의 영, 심령술, 영매, 빙의, 무속신앙, 샤머니즘 등등)이다' 몰아붙인다면, 조금만 성령의 불길이 붙어도 꺼버리려고 하는 분위기가 자리 잡는다. 그는 자기야말로 '성서적'이요 '오래된 신앙의 수호자'라 여길지 모르나, 그 사람 주변에는 성령과 생명 없는 숨 막힘만 가득하다. 그는 제 맘에 맞는 ㅡ 혹은 어느 유명한('정통') ㅡ 신학자들을 구세주로 삼기는 바, 두꺼운 조직신학서를 '위하여' 성경을 읽으면서 자기의 냉랭함과 가듭나지 못했음을 뒤로 감추고 "안전하다 안전하다 안전하다"의 글귀를 찾아 안심의 정욕을 채움 받는다. 그러나 이용도 같은 불과 빛과 생명의 사자가 나타나면 이들은 자기의 거짓과 위선과 빈약함이 탄로남으로써 온갖 명분을 만들어 빛을 죽이려 들게 되고, 그것이 잘 안 되면 '이단의 명패'를 채워줌으로 자기영멸의 길을 자초한다(이 경우 주의할 점 : 예수님이 알려지는 한 빌라도도 알려지듯이 정죄 받은 의인이 역사에 기억되는 한 정죄한 자들도 역사에 같이 기억된단 사실). 이들이 한국기독교를 망하게 하는 방식은 성령을 소멸하여 생명이 없으면서도 겉으로는 높은 곳에 앉아 가장 기독교적으로 행세함으로써 회칠한 무덤교회가 되게 만드는 것이다.

   다른 어느 사람은 심령의 변화와 거룩한 삶보다는 신기한 자랑(?)들로 자기가 주목과 높임을 받는 '일그러진 오순절주의'를 보여준다. 이들은 기이한 체험이나 회개가 없는 열광에 쉽게 빠지고 하는데, 이는 지식정보사회에서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마음이나 주류사회에서 소외되는 감정이 그런 행태를 부채질하는 면도 없지 않아 보인다. 문제는, 이런 신앙은 사랑, 겸손, 희생 같은 참된 기독교를 뿌리부터 잘라버린다. 열매가 없고 겉만 요란한 이런 자들은 스스로 '효험'이 있다는 소문을 내어 순진한 사람들을 꾀어 모으는데 발군의 재간을 보인다. 이들이 한국기독교를 망하게 하는 방식은 울고불로 난리부르스를 추면서 더 큰 성령의 은사요 기독교의 기독교가 되게 하는 사랑(그리스도 닮음, 최고계명, 신구약의 골자)을 뒷전에 두는, 즉 모래를 위해 금을 버리게 만드는 것이다.

   현 한국교계는 극단의 무리들의 발길질 아래 피를 흘리며 허덕이고 있다. 이들은 입을 손으로 막고 이용도 앞에 무릎을 꿇고 배워야 한다. 이용도는 양극단에 쏠리지 않으면서도 진리의 생활화와 성령의 능력이 넘치는 신앙을 보여주었다. 성령의 역사에 늘 마음을 열어놓고 있으면서도 항시 겸비와 기도와 무언으로 자기를 훈련하며 이웃 사랑하기에 목숨을 다했고 하나님의 진리를 배워 순종코자 하면서도 특정 신학전통에 갇히지 않고 각각에서 배울 점을 찾았다. 오, 겸손히 이용도에게 와 배울지어다.

   그럼 무엇이 기준인가? 성경의 진리가 기준이다. 그런데 문제는, 너도 나도 성경의 진리를 따르고 있다고 한다. 오순절주의자는, 사도행전과 고린도전서를 넘기며 자기들이 더 성서적이라고 여기는데, 그러면 개혁주의자는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칼빈주의 = 성경'이요 '개혁주의 = 복음'이라고 자근자근 타일러준다. 그러면 성결교 말하기를, 오순절주의는 과히 체험적이고 개혁주의는 과히 이론적이라 비판하면서 성결교야말로 성경적 신앙이라 하는데, 그러면 이번에는 자칭 타칭 진보 인사(人士)들이 나와서 가장 성서적인 그 '정신'이야말로 자기들에게 있다고 확신하고 나서니, 이는 가장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말만 하며, 남은 그르고 자기는 옳게 여기는 낯가죽이 제일로 두꺼운 사람이 승자라도 된다는 것인가. 오, 주여, 언제나 우리가 성숙한 어른이 되겠습니까?

   인간의 이러한 교만과 자기중심성의 한계를 다 아시는 우리 주님은 그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의 '말'이 아니라 그 '열매'가 그를 보여준다고 하신 것이니, 생활과 인격. ㅡ 거기에 진리적 사랑 맺히는가?


   이용도는 김인서의 말을 가벼이 듣지 않았다. 오히려, 그 편지로 인하여 그는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마음에 풍랑이 일어날 때, 하늘에서부터 "소자야, 안심하라"는 음성이 들려왔다. 이로 인해 풍랑이 잔잔해졌다. 고집을 세워 동지의 말을 듣지 않으려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감동의 확신에 이끌림을 받았던 것이다. 그에게 말씀하신 분 하나님이시라면, 이 대목에서 누가 그를 비난할 수 있는가? ㅡ '그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그에게 환청이 있었던 거에요'라고 할 인간이 아니라면.

   각자 자기의 입장을 확고히 하되 타인의 판단에 함부로 입을 놀리지 말고 진리 안에서 겸손해야 한다. 그리고 열매로 말할 것이다.


   "진리는 말할 바 아니요, 살 바, 장소임을 나는 압니다. 종교는 설교에 있지 않고 삶에 있지 않습니까. 인형, 우리는 삶에 거합시다."


   이용도의 신앙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사랑이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지혜가 높아지만 높아질수록, 사냥꾼들의 맹독은 더욱 진해졌다. 그러나 다시 그러면 그럴수록 이용도의 신앙과 사랑과 지혜도 더 '찐'해지는 것이었으니, 그러한 신앙은 죽어서도 계속 외치고 있다. ㅡ 오늘까지도! 앞으로도!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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