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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쏟을 곳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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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apocmc 작성일18-06-29 13:07 조회2,57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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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2년 말부터의 용도 목사는 몸은 땅에 붙들려 있으나 마음은 온전히 하늘에 가서 속하여졌다. 이유 없이 말썽을 부리고 잘못도 없는데 구박을 해오다가 저의 눈에 좀 틀리게 보인다는 사람을 사랑한다고 해서 이단이니 염병쟁이니 떠들썩하는 세상에서 그들과 함께 오래 살기를 원치 아니하게 되었다. 살아보려는 계획도 없고 살려는 욕망도 없고 그 몸이 땅에 있는 것은 그저 주께서 두시니 두어짐을 받고 있는 것이지 다른 이유도 필요도 없었다.

   그러므로 이때 이후의 용도 목사는 그저 주께서 하라고 하시는 대로 하다가 주께서 부르실 때에 가려는 하늘의 기계, 하늘의 부속품으로서 그저 하나님의 명령에만 복종하고 하나님의 조종하시는 대로 밖에 달리 움직이지 못하는 주님의 막대기가 되었다. 그래서 1933년 초두 이후의 용도 목사의 일거일동은 그저 고요히 기도하다가 주의 음성의 지시를 듣고서 움직이는 것이요, 눈감고 기도하다가 주님의 빛이 인도하시는 방향에 따라 가라는 데까지 가려는 절대복종의 생활이었다. 몸과 목숨이 땅에 있으나 영과 정성은 하늘에 가 있는 생활이었다.


   1932년의 연말과 33년의 초두는 한국 교계에 대 소란이 얼어나 조사, 책벌, 공회결의 등 험한 풍운이 사납게 일어나 용도 목사로 하여금 "사방에서 핍박과 멸시가 조수같이 밀려들어와 나는 거리를 걸을 용기조차 잃는 때가 있습니다. 마음이 민망한 때도 있구요. 그래도 주님 도우심으로 이겨 나갑니다"라는 탄식을 발하게 하는 것이었다.

   1928년 정월 신학을 졸업하고 주님의 일을 받들어 나온 후 어언 5년. 그 동안 교회 담임, 주일학교 사업 등에 복무한 일도 있었으나 그 어디서, 그 무슨 일을 맡는다고 해도 용도 목사가 한 일은 오직 주님의 음성을 직접 전달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의 행적은 인간 역사적이거나 문화사적이 아니요, 사도행전적이요, 요한묵시록적이었다.

   특히 전국 순회 부흥목사로서의 그의 활동은 오직 주님께서 주시는 힘을 받아 오로지 그의 기계로서 그의 조종에 의해서 동(動)하고 정(靜)하고 언(言)하고 행(行)한 것뿐이었다. 인간적인 그 무엇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살았으면 왜 이 세상에서 잘 살아볼 수 있는 길을 취하지 않았고 그 좋은 명예와 인기를 잘 붙들어 명망을 높이려 하지 않았을 것인가.

   이때까지의 용도 목사의 생활, 그것은 주 가라 하시는 곳에 가고 오라 하실 때 왔고 주 외치라 하실 때 외치고 잠잠하라 할 때에는 수천 명을 모아놓고도 한마디 말도 못하고 그냥 단에서 내려서는 것이었다. 주 부르실 때에 있는 힘과 있는 땀을 내 것이라고 하지 않고 죄다 쏟아 바치더니 한준명 사건에 이르러서 "너는 나의 사랑을 보여주라. 나의 당한 욕을 보여주기 위하여 네가 욕을 먹고 나의 사랑을 확실히 알리기 위하여 경우도 따지지 말고 신학설에 붙잡히지도 말고 그저 무차별의 사랑, 무아(無我)의 대애(大

愛), 망아(忘我)의 천애(天愛)만을 보여주라" 하심에 삼천리의 그 박수갈채를 던지고 … 꿰어진 옷자락으로 한준명을 붙잡기로 한 것이었다.

   주 세우시고 주 앉히시며 주 주시고 주 뺏으시니 시무언은 그저 주의 조종하심에 말없이 복종하는 것만이 그의 간절한 소원이었다.

   "내가 이제 무슨 말을 더하리오."

   오직 눈물 흘리며 오직 기도 드리며 주께서 부르시는 순간까지 그저 복종, 그저 사랑의 교훈을 남기기로 하였으니 욕하는 사람들이 사는 평양보다 욕먹는 사람들이 있는 원산에 맘이 끌린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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