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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묵상집

평생 타오를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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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apocmc 작성일18-07-05 12:49 조회2,60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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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교회가 낳은 거대한 부흥사 이강산 목사는 은혜를 사모하여 이용도의 해주 집회에 참석했다. 이때 그는 생의 중대한 사건을 겪는다.


   내 나이 [32]세 되던 해, 즉 1933년 2월 23일 황해도 해주 남본정 교회에서는 나의 신학교 동기내기요, 같은 고향 친구인 '이용도' 목사가 부흥회를 인도할 때였다. 그는 영력이 강한 기도의 사람이고 목숨 걸고 일하는 하나님의 종으로 각처에 다니면서 부흥 운동을 일으키는 대부흥사 목사였다. 그는 33세에 주의 나라로 가셨지만 짧은 기간에 큰 부흥역사를 하였[다].

   나는 마음이 답답하고 은혜를 받아야 되겠다는 간절하고 사모하는 마음에 이 부흥회에 참석하였다.

   삼 일째 되던 날 이 권사라는 사람이 나에게 자기의 사정을 실토한다. 즉 자기는 결혼 전에 어느 여자와 연애를 하다가 그와 헤어지고 그 후에 다른 여자와 결혼하여 아이까지 낳았는데 집회에 참석하고 보니 과거 교제하던 그 처녀를 만났다는 것이다. 그이는 자기와 결혼을 하자는 것이며 만약에 결혼해 주지 않으면 자살한다는 편지를 자기에게 주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권사 자신은 이혼할 수도 없고 또한 예수 믿고 은혜 받은 자가 그런 죄를 범할 수가 없다면서 만약 내가 은혜 받으러 왔다가 불상사라도 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편지를 달라고 해서 내가 가지고, 모든 문제와 염려는 주님께 맡기고 기도 많이 하라고 하였다. 다시 말하면, 그의 문제를 내가 맡아 버린 셈이다. 이 문제를 대담하게 맡은 이유는 지금도 알 수 없으나 하여튼 남의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내가 책임을 지었으니 나도 생명 바쳐서 그를 위해 간절히 가도하니 그 여자가 불쌍한 생각이 들며 진정한 눈물이 쏟아지며 부르짖는 기도가 더 나온다.

   그런데 그날 밤 12시경 그 여자는 은혜를 받았다고 춤을 추며 찬송을 부르지를 않는가. 나는 부지중에 일어나 그 여자의 손목을 잡고 난로가에 앉혀 놓고 22살 된 처녀에게 단번에 욕을 하였다.

   "이 못된 것아, 회개는 하지 않고 춤만 추면 되느냐?"고 소리를 지르며,

   "이 편지는 누가 쓴 것이냐? 당장 네 손으로 난로에 편지를 태우고 이 편지가 타는 것처럼 네 죄도 성령의 불에 태우고 회개하라" 외치니, 그 말에 처녀가 받아 들고 벌벌 떨면서 난로에 넣고 울면서 회개하며 기도한다.

   욕은 했다고 그녀가 너무도 불쌍한 생각이 들어 눈물로 기도하기를, "우리가 다 은혜 받으러 왔는데 이런 시험 받으면 어찌 됩니까?" 하며 기도하는 순간 나의 마음이 뜨거워지면서 큰 사람이 나를 번쩍 일으키더니 내 입에서부터 큰 소리가 걷잡을 수 없이 터져 나오는데,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나의 머리는 깨끗해지면서 나의 갈 길을 환히 비춰주고 보여주기도 한다. "회개하라"는 외침을 절제하려고 아무리 애써도 더 큰 소리가 나와서 절제할 수가 없다. 그러자 내 뒤에서 누가 앞으로 휙 나오는데 감당할 수가 없어 몰려 쫓기다 생각하니 예배당 밖에 나와 서 있는데 얼핏 생각하니 이 밤중에 목사가 시내 거리로 돌아다니며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외친다면 관청, 상점, 가정집 사람들이 보고 미친놈이라고 할 것이 염려되어 기도하니 내 발걸음이 예배당 쪽으로 획 돌면서 또 다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외치게 된다.

   그 결과로 회개 운동이 일어났다. 나는 계속 회개하라는 말을 외치며 예배당을 돌기 시작하는데 내 뒤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행렬을 지어 따라오며 복창을 하여 외친다. 그렇게 하기를 11시간이나 했다.

   나는 온 전신에 능력이 임함을 깨달았다. 병든 사람이나 누구에게든지 손을 얹어 안수 기도하면 손이 닿는 사람마다 뜨겁다고 야단들이다. 나의 자신의 영과 육에 변화가 일어남을 깨달았다. 한 가지 재미나는 것은 내가 미쳐서 잘못 되었다고 도립병원 원장이 진찰 가방을 들고 와서 주사를 찌르려다가 기겁을 하고 뒤에 넘어져 버둥버둥 떨던 우스운 일과, 밤중에 떠든다고 경찰서 순사(순경)가 왔다가 심십육계 줄행랑치던 일들은 지금도 생생하기만 하다.

   성령의 불에 체험을 하니 목구멍에서 나오던 찬송도, 기도와 설교도 뱃속에서부터 나오는데 음성까지도 변하는 실증적 능력이 나타남을 알게 되었다. 성령 받기 전에는 기도의 음성은 구리 소리 같고 설교 소리는 꽹과리 소리 같고 능력의 역사와 회개의 역사가 없었다. 성령을 받으니 성신이 나의 스승이 되어 참 진리를 깨닫게 하고 참 진리를 알게 한다. 또한 얼굴도 눈도 변하고 인격도 변화되어 하나님의 거룩하고 의롭고 진실한 새사람이 된다. 나 같은 죄인이요, 깨질 수밖에 없는 그릇 같은 나에게 이런 큰 은혜 주신 하나님께 감사, 영광 돌린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난 후에는 며칠이고 음식을 먹지 않아도 배고픔이 없고 며칠을 잠을 자지 않고 철야기도해도 고단치 않으며 전도를 해도 피곤 없이 계속할 수 있었으니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서야 사람이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은혜 받은 그 순간부터 오랜 질병이던 폐병, 늑막염, 신경통, 소화불량, 불면증이 어디로 갔는지 나의 몸은 완전히 건강해지고 지금까지 그 병들이 소식도 없고 전화, 전보 한 장 없다. 할렐루야! 그 후부터 나의 몸이 건강해서 수십 년 목회를 하고 부흥회를 인도하였어도 불편 없이 내 나이 78세까지 지내고 있다.

   얼마 전 감리회 원로 목사님들 모임에 참석할 일이 있었다. 그 모인 중에 내가 제일 좌상이며 다른 목사님들은 정년은퇴하고 뒷전에만 앉아 계신데 나는 늙어서까지 목회를 하며 은혜롭게 살게 됨을 하나님의 축복하심으로 믿고 감사하는 바이다.

   이강산은 이용도의 집회에 참석하는 1933년 이전에도 분명 의욕적으로 교회부흥을 위해 힘썼으나 그것은 '나 중심의 인위적인 것'이었다. 그는 건물과 교회조직과 인간지식과 심지어 오락과 화투치기 놀음으로 사람들을 교회에 붙잡아두고자 했다. 그는 큰 농사를 짓는 유복한 가문의 장남으로서 교육을 잘 받고 성경학교와 신학교를 나온 수재였음에도 그의 설교는, '자장가를 불러주는 아기 엄마'와도 같았다. 이후 폐병과 늑막염과 신경통, 불면증, 소화불량으로 고생하며 죽음의 문턱까지 드나들던 중 몸이 조금 나아지니 이번에는 이름만 목사지 실제로는 농촌개혁운동에 온 힘을 쏟아 '영혼의 가뭄'이 극심해졌다.

   그러던 중 은혜 받기를 경심하고 이용도의 해주 집회에 참석하여 성령의 불세례를 경험하였다. 이후로 그는 더 이상 무기력한 목회에 빠지지 않았고,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회개의 역사와 교회의 태동이라는 열매를 맺었다. 또한 성공(?)한 목회자가 다이빙하기 쉬운 세속화나 음란의 수영장에 뛰어들지 않고 한 길을 갈 수 있었다. 

 

 

   체험 : 득? 실?

   '체험'이라는 단어를 극히 두려워하는 어느 인사들은 아주 약간의 체험이라도 간증하는 이들은 마냥 성경을 가벼이 여기는 불효자 취급을 하여 불필요하고 진실과도 다른 오해를 만들어내는 무례가 한국 기독교계에서는 이따금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날마다 밥을 짓듯 죄를 짓고 회개하고서도 죄를 짓고 은혜 받고서도 죄를 짓고 "사랑하자" 하고 나서 죄를 짓는 것은 대체 무엇 때문인가?

   박해가 있었던 일제시대의 성도들이 오히려 신앙이 더 강인했던 것은 시대의 영향만이 전부가 아니라 그들에게 체험이 더 많았던 때문도 있을 것이다. 체험을 통해 하나님은 그들에게 더욱 가깝게 느껴졌고, 이는 그들의 인격과 생활이 더욱 하나님 중심이 되도록 해주었을 것이다.

   성경을 부인하고 체험에 몰두하는 것은 물론 경계하고, 시정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은 극히 일부요 또 이런 사람들은 대개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체험'이란 단어에 화들짝 경기를 일으킬 필요는 없다. 진리를 배우는 것만 아니라 체험할 수 있도록 격려해야 하나님께 순종하는 신앙을 갖출 수 있지 않겠는가.

   때로 상식으로는, 혹은 개인적 판단으로는 다 담기 어려운 역사도 있을 수 있다. 이강산 목사의 이야기들 중에는 그런 경우가 몇 차례 나온다(죽은 사람이 살아나거나, 천사의 인도로 주님의 보좌로 가서 사명을 받거나). 그러나 그는 '체험주의자'가 아니었고 그저 늘 기도하며 깨끗한 정신과 복음신앙으로 주님께 순종하려 했다. 그랬기에 체험이 많았던 건지도 모른다.

   우리도 체험을 사모하자. 말씀과 기도와 봉사를 팽개친 체험이 아니라, 말씀과 기도와 봉사 중에 이루어지는 체험을 사모하자. 그래서 그 체험이 다시 말씀과 기도와 봉사를 강화시키게 하자. 체험을 시비거리로 여기지 말고 복잡거리로 만들지 말고 간증거리로 삼자. 성령의 충만함(누구에게는 불세례)을 실제로 경험하자. 내 것이 되게 하자.

   그럼 툭하면 죄에 떨어지는 신앙이나 남의 신앙에 비평질만 하는 소화불량 신앙에서 벗어나, 죄를 멀리하고 의와 사랑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는 신앙인이 될 것이다.

   말의 힘은 여기까지다. 경험은 경험한 사람의 몫이지 말하는 사람의 몫은 아니니까. 승자는 말이 없다고.

 

 

"주님을 알게 해주옵소서. 말씀을 통해 알고 성령을 통해 알게 하소서. 생활을 통해 알고 체험을 통해 알게 하소서. 체험이 없을 때 주님을 알지 못하여 경외하지 않음으로 죄를 짓기 쉽습니다. 세속화와 탐욕과 음란에 빠지는 것은 주님을 경험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체험은 개인적으로 사모할 것이요, 했으면 이후 죄를 멀리하고 거룩한 생활을 하는 가운데 주의 나라를 위해 겸손하게 봉사해야 할 것입니다. 고로 '왜 체험을 사모하는가?' 이는 세상에 빠지지 않고 죄를 이기고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능력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사랑과 진리와 의를 위하여'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는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사람에게는 복지(福祉)입니다. / 오 주여, 주님을 경험으로 알게 하여 주옵소서. 진리를 경험으로 맛보게 하옵소서. 그래서 세상 부러울 것이 정말로 없게 하시고 정말로 주님으로만 만족되게 하소서. 그렇지 못하면 이 영혼의 기근을 어찌 감당하겠습니까? 세상에 떨어질지 죄에 떨어질지 불안해서 어떻게 살겠나이까. 주의 능력 없이 조마조마하게 사는 인생 아니라, 주의 능력으로 근질근질하여 주의 뜻을 이루는 인생 되게 하소서. 주님, 주를 알기 위하여 더욱 목이 마르게 하소서. 주님만이 나의 생명수가 되시나이다. 그 물을 제게도 주옵소서, 들로 가야 합니까? 산으로 가야 합니까? 선조들은 그렇게 하셨는데, 오늘 저는, '꼭 산에만 하나님이 계시는 것은 아니다'라며 변명조로 자기의 연약함을 가리면서도 지성인 행세를 하고 있으니 그 꼴이 걸작이로소이다. 오, 가련한 내 영혼! 나의 주님, 어디에나 주는 계시오니 어디서나 주를 찾나이다. 어디서나 주는 말씀하시니 어디서도 주를 듣겠나이다. 이를 위해 나의 심령과 생활이 가난해지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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