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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길한 징조 10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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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apocmc 작성일18-07-17 14:38 조회2,49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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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이 무더위 속에서 하루하루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귀찮고 소란스러운 학기시험은 하루하루 가까워오고 있었다. 물론 공부가 모두 어려운 건 아니었지만 여섯 달 동안 배운 17~18과목을 한꺼번에 시험 치르는 게 역시 귀찮은 것만은 사실이었다. 더구나 나에게는 엷은 공포가 뒤덮고 있었다. 별로 건강치도 못한 몸이 학비를 벌어가며 공부를 하자니 책을 들여다 볼 시간이 거의 없다시피 했고 더구나 책 한 권 사보기가 쉽지 않았다. 많은 결석 때문에 필기조차도 거의 하지 못한 나에게 시험은 분명히 험한 고개 길이요, 공포의 대상이었다. 학기시험은 10월 중순부터나 시작되지만 9월말만 되도 하나 둘씩 시험이 있었다.

   10월 2일, 이날은 영어독본 시험을 치르는 날이었다. 새벽에 잠을 깬 나는 책을 두어 줄 들여다 보다가 조반을 지어 먹고서야 다시 책을 펴 들었다. 그런데 어디선지 세게 부는 바람 소리 같은 게 들려왔다. 이상한 생각에 귀를 기울이며 책을 읽고 있었다. 순간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불이야!"

   황급히 뛰어나간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바로 내 방 처마에서 불길이 솟아나고 있지 않는가. "불이야!" 소리도 나오지 않고 손발을 놀릴 수도 없었다. 넋이 나간 것이었나 보다. 높아지는 불길을 바라보며 갑자기 정신이 든 것처럼 지붕에 뛰어 올랐다. 불길이 날름거리고 있었다. 아무 생각도 없이 칼로 이엉을 끊으며 미친 듯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있었다. 이때 차가운 물길이 나를 덮어 씌웠다. 바로 앞 집 이원철 박사 댁에서 강력 펌프로 물을 끼얹는 것이었다.

   나는 멍하니 그 자리에 서서 불길이 물줄기 속에 힘없이 꺼져가는 것을 보고 있었다. 20분쯤 지났을 때 불빛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여기저기에 흰 연기만 물씬물씬 피어오르고 있었다. 퍼뜩 시험을 생각하며 나는 지붕에서 내려왔다. 그러나 사람들은 다시 올라가 혹시 남아 있을지 모르는 불을 경계하라고 하였다. 가뜩이나 준비가 없는 데다 그나마도 시험을 치지 않으면 더 큰 일이라는 생각을 하니 마음은 조급하고 안타깝기만 했다.

   다시 올라가 지붕 위에서 50분을 날려버리고 내려왔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불은 내가 피워둔 숯불에서 일어나 덧문을 태우고 처마를 거쳐 지붕을 태운 것이었다. 방에 들어섰을 때 옷은 땀과 물로 푹 젖어 있었고 힘은 쭉 빠져 버렸다. 그러나 가슴은 아직도 콩이 튀듯 두근거렸다. 이때 무언가가 내 눈에 번쩍 띄었다. 바로 이용도 목사님의 사진이었다. 금방 눈물이 나왔다.

   '목사님, 이즈음 어떠하십니까?'

   갑자기 끝없는 그리움이 조수처럼 밀려들었다. 왜 내가 전같이 목사님 곁에서 따뜻하게 지내지 못하고 혼자서 이 고생을 하다가 마침내는 이런 변까지 당하게 되었나. 갑자기 다시 찾은 목사님의 영상은 내 가슴 속을 밑 모를 외로움과 그리움으로 가득 채우고 말았다. 그리움의 눈물은 그냥 쏟아졌다.

   '목사님, 나의 경모(敬慕)하는 목사님.'

   그렇게도 나를 이해해주시고 사랑해주시던 목사님이 아니었던가. 언제까지라도 나는 결코 목사님의 곁은 떠나고 싶지 않았다. 결단코. 그러나 내 마음속은 반석 같은 굳은 결심으로 채워져 있었다. 내가 이 길을 걷는 것은 크게 느낀 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난 겨울, 나고야에 있었을 때 나는 공부를 많이 해서 용도 목사님의 유력한 조력자가 되어 보리라 결심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의 사업을 좀더 힘있게 도와 드리고 그의 생활을 좀더 완전하게 기록하여 후세에 전하겠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래서 "될 수만 있으면 공부는 좀더 하자. 다른 무엇보다도 바로 이 일을 위해서라도, 그리고서는 아주 목사님을 따라 나서자." 이것이 나의 소원이요, 나의 기도였다. 이렇게 시작한 공부이기에 웬만한 고난이나 어려움은 큰 문제로 삼지도 않고 이겨 나온 것이었다.

   그러나 그 날 아침에 그런 일을 당했을 때는 마치 그 동안에 참아왔던 눈물과 그리움이 한꺼번에 터지는 것 같았다. 이제라도 모든 것을 버리고 목사님께 뛰어가 따라다니고만 싶어졌다.

   시계를 보니 첫째 시간이 거의 다되었다. 어쨌든 학교까지 가보기라도 하려고 일어섰다. 학교에 도착했을 때 시험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그날 영어독본 시험을 어떻게 치렀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날 종일 내 가슴은 두근거리기만 했고 밤중에도 목사님의 안부를 생각하며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다음날도 이렇게 보내고 말았다.

   10월 3일의 가슴 두근거리던 밤을 지내고 여느 때처럼 4일 아침 해도 동쪽에서 솟아올랐다. 밥을 끓여먹고 미처 세수할 겨를 없이 학교로 갔다. 그러나 그날도 나는 여전히 넋잃은 사람이었다. 강의실에 책을 둔 내 발길이 사무실로 행해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무엇에 이끌리는 것처럼……. 어지럽게 쌓여있는 편지를 뒤적거리던 나는 얼핏 내 이름을 보았다. 원산에서 부쳤고 2전 우표가 붙어 있었다. 거기에다 봉해지지도 않은 채로 있었다.

   '아마 무슨 광고나 선전문이겠지'라고 생각하며 나머지 편지들을 모두 들춰보았다. 그러나 다른 ​편지는 없었다. 그 편지를 들고 사무실을 나오려던 발걸음이 문득 멎어졌다. 별로 대수롭지 않은 편지라 생각하고 뜯어볼 생각도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무슨 생각에선지 곧 봉투를 젖혔다. 반지에 등사된 종이가 한 장이 나왔다. 글씨도 얼른 알아 보기 힘들었다. 그러나 몇 자를 유심히 읽어 내려가던 나는 숨이 멎어지는 것 같았다. 얼굴에 확 더운 피가 올라오는 것이었다.


謹訃

李龍道牧師 以宿患 呻吟中 不幸 當日 午後 五時 離世 慈以呈訃

追而 十月四日 午後三時 永決式 擧行爲定 玆以 添告

一九三三年 十月 二日


삼가 아룁니다.

이용도 목사님께서 오랜 병환으로 신음 중 불행하게도 오늘 오후 5시에 세상을 떠나셨나이다. 이에 부고를 드리옵니다.

추신. 10월 4일 오후 3시에 영결식을 거행하기로 정하여 덧붙여 알리나이다.

1933년 10월 2일

(계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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