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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묵상집

경모敬慕하는 용도 목사님 영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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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apocmc 작성일18-07-31 17:31 조회2,27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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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증언자_ 조경우

   목사님, 저는 목사님을 몹시도 그리워했습니다. 동리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또는 친구들의 말을 듣고 나는 몹시도 목사님을 그리워했습니다. 그 음성이 듣고 싶고 그 얼굴이 보고 싶고 그 손목을 잡아보고 싶은 애모의 정이 내 가슴에서 끌어 올랐습니다. 저는 목사님을 까닭 없이 사랑하고 이유 없이 사모한다고 남에게 비난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내 가슴속에는 설명할 필요 없는 사랑의 까닭과 사모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날이 가고 달이 지나갈수록 저는 목사님 때문에 손에 일이 잡히지 않고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밥이 맛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멀리 삼방에 계시다는 소식도 듣고 그 후 원산에 가셨다는 소식은 들으면서도 가뵙지​ 못한 것은 저에게 여비가 없었던 까닭입니다. 저는 그때에 서해안 용강군 일병리라는 농촌에 있었습니다. 그 후 목사님의 병환이 극히 위중하시다는 근심스러운 소식을 듣고 생전에 얼굴이라도 뵈려고 신 끈을 매고 지팡이를 끌고 세 동무가 길을 떠났습니다.

   당일로 160리 길을 걸어 평양에 도착하여 한 밤을 지내고 이튿날 새벽에 또 다시 길을 떠나 서해변에서 동해안 원산까지 770리 길을 도보로 9일만에 도착하여 부랴부랴 광석동을 찾아가니 목사님은 1주일 전에 별세하시고 장사 지낸 지도 4일이라고 홍태헌 형이 말했습니다. 이에 우리 세 친구는 기둥이 무너진 듯, 등불이 꺼진 듯 기운을 잃고 실망하고 울었나이다.

   그래서 두 동지 중 하나는 남쪽 사천으로 가고 하나는 서쪽 용강으로 헤어지고 나만 홀로 원산에 떨어져 있어서 목사님이 그리울 때마다 목사님 무덤에 가서 땅을 치며 울어도 보고 풀 포기를 붙들고 기도 드리기도 했습니다. 밝은 새벽이나 안개 낀 저녁에 고요히 목사님에게 속삭여 보기도 했으나 목사님은 늘 아무 대답도 안 하시었지요.

   저는 목사님께서 읽으시던 책을 많이 읽었나이다. 그 중에서 기억되는 것은 [우찌무라(內村)전집] 중의 중요한 것과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a Kempis)의 책, 아타나시어스의 [수육론(受肉論)], 스베덴보리(E. Swedenborg)의 저서, [성 프란시스전] 등이었습니다. 목사님이 읽으시며 선을 긋고 표를 한 부분에서 저는 가끔 울기도 했지요. 목사님의 손때 묻은 부분에서는 목사님의 거룩한 생활의 향기를 맡기도 했습니다.

 목사님의 책을 읽으며 목사님 무덤 곁에서 울며 기도 드리는 동안 저는 목사님의 좌우명이신 무언(無言), 겸비(謙卑), 기도를 배웠습니다.

   1년 반 동안을 거진 매일 한 번씩은 목사님의 무덤을 찾아갔었지요. 저는 목사님의 마시던 광석동 샘물을 날마다 마시었사오며 목사님의 영구를 운반하였다는 상여를 가끔가끔 만져보았습니다. 마치 성자의 유적을 순배하는 순례자처럼 목사님께서 앉으셨다는 신학산 뒤 반석 위에 앉아 보기도 하고 목사님께서 기도하시었다는 골방에 가서 엎드려 울기도 하였습니다. 금식기도도 하고 철야기도도 하고 산상기도도 하고 불면(不眠), 불휴(不休) 성경을 읽기도 하고 맨발을 벗고 얼음길, 눈길을 걸어보기도 하는 등 난행(難行)과 고업(苦業)으로 자기를 이겨보려고 해를 쓰기도 하였습니다.

   목사님, 이 모든 것은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주님을 사랑하려거나 주님을 따라가려면 미친 사람처럼 되라"는 말씀에 내 영혼이 자극과 충동을 받은 까닭이었습니다. 이 모든 경험과 고생이 후일 나의 영혼에 좋은 양식이 되었습니다.

   목사님, 저는 성경의 인물 중에서 사모하는 인물이 몇 분 있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어린 예수를 구주로 찬양하던 안나와 시므온을 특히 사모하시었지만 저는 다윗에게 죽임을 당한 헷 사람 우리야와 사울파에게 죽임을 당한 스데반 집사를 사모하오며 교회에서 버림을 받으신 용도 목사님이 오늘 이 시간에도 애끓게 사모되옵니다.

   나의 경모하고 애모하는 목사님, 교회는 목사님을 버렸사오나 하나님은 받으셨사오며 사람은 구박했으나 주님께서는 높이 드시었나이다. 목사님이시여, 불의 사자여, 진리의 광인(狂人)이시여, 목사님께서 다녀가신 후로는 이 땅에 아모스같이 죄를 책망하는 종도 없고 예레미야 같은 일꾼도 없나이다.

   목사님이여, 날이 갈수록 불의 사자가 그립고 진리의 광인이 사모되오나 시들어가는 이 백성을 위하여 눈물을 흘리는 예레미아가 없나이다. 그러므로 이날 이 시간도 저에게는 목사님이 간절히 사모되나이다.

   목사님이시여, 변종호 형은 목사님을 생전에 뵈옵고 목사님의 사랑을 몸소 받은 바 있다 하오나 저는 보지 못하고도 잊을 수 없사오며 목사님의 음성을 한번 듣지 못하고도 이리 애가 타오니, 목사님, 이 가련한 영을 지켜주시고 붙들어 주시여서 영광의 그 아침에 반가이 만나 뵈옵게 해주소서. 아멘.

 

   큰 인물은 큰 인물을 낳는 가 보다. 이용도는 짧은 기간에 모든 것을 쏟아 부었고 그 영적 후손들은 긴 시간 주의 일을 감당했으니, 주님의 지혜와 섭리를 찬송할 따름이다.

   청년 조경우가 930리를 걸어 이 목사님의 처소를 찾아갔던 해가 1933년이니 그의 나이 스물다섯이었다. 후로 1년 반 동안 거의 매일 이 목사님의 무덤을 찾아갔었고, "주님을 사랑하려거나 주님을 따라가려면 미친 사람처럼 되라"는 말씀에 감동되어 젊어서 고생을 사서 했다. 그런 정신이 위대한 실천을 내었고 그 위대한 실천은 1988년 하늘로 가시는 그날까지 주님을 위해 모든 힘을 쏟게 했던 것이니, 젊은 날 주님을 따르기 위해 의미 있는 고생을 치열하게 사들이는 것이 얼마나 유익한지 생각하게 되는 대목이다.

   될성부른 사람은 진작 그 싹이 보이기 마련인데, 때로 그 싹은 특별한 누군가를 통하여 심겨지거나 더 좋은 토양으로 올겨지기도 한다. 고백자가 젊은 날 이용도에게 자극을 받아 더욱 좋은 나무로 성장하는 평생의 자양분을 얻은 것처럼 말이다.

   이용도를 통해 신앙의 깊은 감화를 받았던 청년은 조금씩 이용도를 닮아갔던 것 같다. 이후 대표적 민족교회 중 하나인 수표교교회를 담임했던 그에 대한 평가를 들어보면,​

 

   해방 이후 전쟁과 극심한 사회변혁을 거치며 교회에도 분열과 갈등의 바람이 불어왔다. 수표교교회도 교회의 내분을 거듭하였고, 교역자는 자주 이동하였다. 이렇게 표류하던 교회를 재건한 이는 1959년 부임한 조경우 목사이다. 그가 1978년까지 목회하는 동안 교회는 오랜 갈등과 분열의 아픔을 싸매고 새로운 화합의 장을 열었다 … 그는 또 검소한 생활을 강조하여 목회자가 성도들과 비교하여 중간 이하의 경제생활을 해야 한다며 사례비를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었다. 게다가 자비량 전도를 강조하여 해마다 일정한 기한을 정하여 자비량 전도를 떠났다 … 조 목사와 더불어 수표교교회는 갈등의 상처를 회복하고 화합하였다. 70명 이하로 줄어든 허약한 교회는 이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였다. 1969년 창립 60주년을 기념하여 두 번째 성전을 봉헌하였고 많은 평신도 지도자들을 세웠다. 그리고 65세에 스스로 은퇴하였고, 은퇴할 당시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조 목사를 위하여 성도들은 삶의 터전을 마련하여 감사하였다.

 

​   조경우 목사의 목회 정신에 대해서 알려주는 또 하나의 대목이 있다. 수표교교회에서 전도사로 있던 신학생의 증언이다.

 

   어느 토요일 중고등부 예배 드리는 것을 뒤에서 참관하신 후 나를 부르셨다. 원래 자상하신 분이셨는데 그날은 달랐다. 심하게 야단을 치셨다. "자네, 설교가 어찌 그 모양인가? 왜 성경 말씀이 없는가? 아니 성경을 이용해먹으면 안돼. 그래가지고 어찌 목사가 될 수 있나? 일찌감치 그만 두고 선생이나 되게. 목사는 목숨을 걸고 성경을 읽어야 하네."

 

   오늘날 한국 사회에 많이 배워 제법 똑똑하다는 사람들이 많다. 공부를 많이 하면 길고 복잡한 단어들을 이마에 붙이고 다님으로써 유식하게 뽐낼 수도 있다. 그런데 그 똑똒함이 가리고 있는, 더 깊은 곳에 웅크리고 있는 정신의 강인함 혹은 나약함, 이것은 어떤가? 예수께 대한 충성, 성경에 대한 목숨걺은 어떤가? '어려운 말들'로 '쉬운 길'을 가고 있는가?

   많이 배웠고 또 많이 배워야 하는 현 한국 사회에 보완적으로 필요한 것은, 선진들이 가졌던 강인한 마음가짐과 그에 부합하는 결연한 삶, 즉 생활 방식과 자세일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삶이 청빈해지는 것이고 최소한 소박해지는 것이며, 편하고 높은 자리에서 내려오는 것이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 겸손하여 자기를 높임이 없는 것이며, 좋은 것을 이웃과 계속적으로 나누면서 자기는 죽어지는 것이다. 이는 이용도의 정신이요 사도 바울의 정신이며 예수님의  정신이다. 교회 개혁이 절절하게 요구되는 오늘날 우리의 정신이 되어야 하는 그 정신이다. 목회에서 은퇴하는 조경우 목사님의 고별 설교 제목은 다음과 같았으니, 이는 이용도의 신앙이기도 했다.

   "예수로써 만족하옵소서!"​.

 

 

"이 땅에 자기의 사복(私腹)을 채우기 위하여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많고 또 자신이 망할 뿐만 아니라 남을 죽이기까지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 중에서 소자로 하여금 제 몸을 죽여 남을 살리시는 주님을 본받게 하시오니, 오 주여, 그 길에서 아름답게 죽어지게 하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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